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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발에 신은 장갑

2003.09.13 19:18

쮸쮸바♡ 조회 수:1481

아버지 장례식날, 초등학교 시절 오가던 그 산길을 20년 만에 지나며 동생과 전

몹시도 추웠던 어느 겨울날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내 고향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흔히 번재라고 부르지요. 시라고는 하지만 지

금도 버스가 하루 네 번밖에 다니지 않는 산골이랍니다. 어릴 적 한겨울이면 엄

마는 부엌 아궁이 앞에 장작을 세워 우리 형제들의 신발을 기대어 놓았다가 학교

갈 시간에 맞추어 따뜻해진 신발을 차례로 내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뒷간에 다녀오던 저는 날마다 아궁이 앞에 놓여 있던 신발이 보이지 않기에 형제

들의 신발을 죄다 모아 아궁이 앞에 세워 놓고는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펑'하는 소리에 부엌으로 뛰어가 보니 아궁이 앞에 두었던 신발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신발은 새카맣게 다 타 버렸지요. 학교는 가야 했기에 저와 동생들은 여름 슬

리퍼를 신고 길을 나섰습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자니 발이 얼마나

시리던지요.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울보 동생이 급기야 눈물 콧물 흘리며

울어 댔습니다. "언니야 대문에 발 시리다." 미안해진 제가 "그럼 이 장갑이라도

신어 볼래?" 하자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내밀었습니다. 장갑을 벗어 동생

의 발에 신겨 주고 눈물로 범벅이 된 동생의 볼이 얼까 봐 손을 모아 호호 불어

주며 넘어가던 그 산길, 그날 따라 왜 그리도 멀던지요.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산길이 지금은 너무도 작고 쉬이 갈 수 있는 곳이 되

어 버렸습니다. 산길을 넘으며 힘들고 괴로웠던 세월 동안 의 상하지 않고 서로

잘지내고 있는 형제들에게 새삼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낍니다.

출처:아름다운세상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