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이 실패한 이유를 알고 있니?"
"그게 누구에요?"
"흥선 대원군이라고 하면 알까?"
"아…, 그 흥선 대원군."
그는 잠시 숨을 가다듬는 듯,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원점으로 돌아와서, 그가 실패한 이유를 알겠니?"
"지나친 쇄국으로 나라의 발전을 저해한 것…. 아닌가요?"
"아니야."
나름대로 좋은 답변을 내놓았다고 생각했건만, 그의 대답은 부정을 담았다. 그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없겠니?"
"흐음……."
그는 느긋한 표정으로 날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물었다.
"모르겠니?"
"네."
"잘 들어. 그가 실패한 이유는……"
그는 조용히 운을 띄우고는, 진지한 음성으로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실패한 이유는 지지세력이 없었다는거야."
"무슨 말이죠?"
"그는 서원을 정리하여 농민들의 지지, 민심을 얻었지."
"그렇죠."
"그런데, 그 다음 경복궁 축건으로 또 민심을 잃었지."
"그렇긴 하네요."
"바로 그거야."
"네?"
한창 설명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난, 그가 갑자기 결론을 내려버리자 당황하고 말았다.
"바로 그거라고."
그는 나에게 다시 사실을 인지시키려는듯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렇다면…?"
"그래. 그는 워낙에 중립적이었지."
"하지만, 서원 철폐는 그의 왕권 강화가 목적 아니었나요?"
"그러면서 농민들의 지지도 얻으려 했을테지. 경복궁 축건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지만."
그의 대답이 조금은 흐트러진 듯 했다. 난 그의 논리를 깨 보고 싶은 반항심에, 그를 계속 몰아 붙여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그건 민생안정과 상관이 없지 않나요? 그는 그 자신을 위해서 일한 것 뿐이잖아요?"
"아니야. 언제나 일에는 부가적인 요소가 따라붙게 되지."
"그건 또 무슨…?"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가효과가 온다는 거지."
"왕권 강화와 함께 민심도 들어온다?"
"그래. 그것이 바로 답이야."
"……."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조리있는 설명에 난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는 체념하듯 말했다.
"그건…, 어쩌면 정치가들의 운명일지도 몰라."
"네? 무슨 말씀이에요?"
계속 그의 말에 의문만을 나타내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깨끗한 정치가는 상류층과 하류층 모두에게 비난을 받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그 예인가요?"
"그는 한국 정치계의 마지막 실력자였다고도 하지."
"……."
"하지만 부패한 정치가들은 상류층의 편만을 들지. 당연히 하류층에게 비난받는거고."
"그렇다면, 저라도 부패한 쪽이 나을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한 쪽에서만 비난을 듣는 쪽이 낫잖아요? 양쪽보다는."
"그러나 세상은 그들이 흔히 말하는 하류층이 대다수다. 너의 자손을 버릴 셈이냐?"
"그렇다면, 전 하류층을 구제하는 쪽을 택하겠어요."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뾰족한 송곳은 망치로 쳐서 뭉그러뜨리는 법이야. 손이 찔릴 우려가 있거든."
"주위에서 견제당한다…. 이건가요?"
"그래."
전혀 방도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난 그 '단 하나'의 결론을 힘차게 입으로 내뱉었다.
"그렇다면, 전 정치따윈 하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