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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The Fey Tarot
-마법사가 되는 방법-


0. The Fool

어리석은 자여. 불쌍한 영혼이여. 흐림 없는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그대가  가진 것이 모두 진리는 아니다. 허상의 본질을 깨달아라. 그대의 가능성을 실험하라. 해답은 그대 안에 있다. 그러나 그 여정은 짧지 않을 것이다.

-자유와 혼란, 집중할 수 없음, 이성이 없는 본능, 감정이 없는 이성, 훌륭한 통찰력





또 다른 해가 떴다. 새로운 한해의 시작을 알린다. 항상 같은 해이지만 뭔가 더 밝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새해 첫날이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이번 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이다.

“위실! 행복한 새해가 되길”
“행복한 새해가 되길”
“이제 위실도 17이지? 그럼 순례를 떠나겠네?”
“당연한거 아니겠냐?”
“이씨…… 갔다오면 이제 반말도 못하겠다?”
“지금도 하면 안 돼!”

그렇다. 17살이 되었다. 순례! 이 좁고 답답한 산촌을 떠나 대륙을 횡단하는 순례를 떠날 나이.
순례란 성인식의 한 과정으로, 대륙 곳곳에 있는 다섯 순례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다. 대략 1년 정도 걸리는 이 여행이 마무리 되면 나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 인정받게 되고 돌아오는 날 성인식을 올리게 된단 말이야. 다시 말하면 결혼, 에헤헷.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되는 거지.

“위셀군-”
“아, 카알”
“촌장님께서 찾으시네. 어서 가보려무나”

카알은 마을에 몇 없는 ‘젊은 남자’ 다. 이제 27살인데도 벌써부터 저런 중늙은이 말투를 쓰는 건 늙은이 밖에 없는 현실이 만들어낸 비극이 아닐까?

수마와의 힘겨운 투쟁, 투쟁, 투쟁. 그러나 결국 패배한 나는 그 대가로 이런 혹을 선물 받았다. 크윽. 저렇게 오래 말씀하시고도 끄떡없는 저 체력을 보니 촌장님은 앞으로 10년은 끄떡없으시겠군. 에고 아파라.
유야수는 산 가운데 위치한 마을. 그래서 해가 늦게 뜨고 순식간에 져버린다. 한 순간에 갑자기 밤의 장막이 내려오는 이런 신비한 순간은 산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경험하지 못하겠지. 나처럼 17년을 살아오면 이 어두운 밤에도, 정말 손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아스라이 보이는 달빛과 별빛에 의지해 걸어 다닐 수 있지만.
타박 타박 타박. 촌장님의 말씀은 별게 없으셨다. 타박 타박 타박. 순례의 숭고한 의미와 순례자의 바람직한 자세 같은 건 좀 생략해도 될 텐데. 그런 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타박 타박 타박.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일과에 대한 말씀. 타박 타박 타박. 오전엔 홉스 씨에게 호신술을 익히고 오후엔 카알에게 이것저것 배우란다. 타박 탁 타박. 호신술이래봐야 거창할 것도 없어. 들짐승 한두 마리 상대할 정도면 달인이라 불러 마땅한 것들이겠지. 타박 타박 타박. 카알과의 수업이라……, 이것저것 배우라니 도대체 무슨 말이야? 어차피 집에 아무도 없는데 두 달 동안은 그냥 카알 집에 얹혀살아?

타박 타박 타박. 타박 타박 타박. 타박 타박 타박.




“위실군, 졸고있는겐가?”
“안자아암요”
“으흠, 그럼 잠깐 쉬세나. 많이 피곤해 보이는구만. 기다리게. 내가 차를 내오지”

으하으하으암. 휴아. 진짜 피곤하네. 내가 철골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체력에 자신 있었는데.
아침 먹고 점심까지 배우는 ‘막대호신술’은 결코 물로 볼게 아니었다. 홉스 씨가 지팡이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단 소문은 아무래도 소문이 아닌가보다.

“위실군, 이것 좀 마시게나”
“니이엡. 으음…… 으웨이엑! 써!”

정말 잠이 확 깨네. 으읍 으읍. 눈물이 핑 돌았다. 이씨. 이양반이 뭐가 그리 즐거워요? 왜 피식피식 웃냐고! 이렇게 쓴걸 먹여놓고!

“으웨엡, 퉷퉷. 이거 도대체 뭐예요?”
“하하하. 잠이 확 깨지?”
“몰라요, 으입! .……으하아암”

정말 잠이 쏟아지는군. 아직 해도 안 떨어졌건만. 잠깐, 이런 쓴 차를 먹여서 잠을 깨운다는 건 수업이 끝날 때 까지 안 재우겠단 거잖아! 카알! 나 피곤한거 안보여요? 제발! 그만 자요, 자자구요. 잠에 대한 열정과 소망을 담았지만, 자꾸 감겨져서 의지는 없어도 호소력이 배가되는 내 눈을 바라보던 카알은 속삭이듯, 그러나 속삭이기에 머리 속 깊이 까지 새겨지는 듯한 신비한 어조로 말했다.

“풀잎을 깨우는 이슬같이, 미끄러져 구르는 보석같이, 햇살에 스러지는 눈물같이”

나에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 새벽 산책길에, 나뭇잎에서 미끄러져 목을 적시는 이슬이 아직 남은 잠을 쫓아버리는, 싱그러운 활기가, 맑아지는 정신, 갑자기 넓어지는 시야. 뭐야 이게? 설마!

“이거 마법? 카알이 마법을 쓴거에요?”
“아하하, 잠이 확 깨는가? 정신이 맑아졌나보군?”
“방금한거, 마법이지요?”
“눈이 생기를 찾았는걸? 위실군”
“예? 아, 예. 아니, 근데 마법이에요? 마법사?”
“지속시간이 그리 길진 않겠지. 아까 차를 마시고도 두 마디 하고 다시 하품했었지? 자자, 어서 수업해야지”
“카알! 말 돌리지 말고요! 방금 뭐한거에요? 진짜 마법이에요?”

카알은 미소지었다. 그리고……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며 수업을 계속했다. 달이 떠오를 때 까지. 수업이 끝나기만 해봐라, 내가 궁금한 거 다 물어보리라.
하지만, 해가지고 달이 떠올랐을 때 더 이상 수마에 저항 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쿠울-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카알에게로 향했다. 수많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점점 더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도대체, 왜, 어째서, 어떻게? 쉼 없이 달리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고는 -아무도 안 봐서 다행이다. 17년 동안 걸음마를 배우고 있단 사실을 들킬 순 없잖아?― 잠시 나무에 기대어 쉬었다.

“카알이 쓴 건 마법이야. 그런 거 같지?”
짹짹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짹짹
“나도 그게 궁금해. 왜 아직 한번도 쓰는 걸 안보여 줬을까?”
짹짹
“별로 숨길만 한건 아니지 않아?”
짹짹
“그런 사정이 있다고? 정말? 하긴, 카알이라면 그럴 수도”

참새와의 심도 있는 토론 끝에 내린 결론 -카알은 숨어사는 대 현자로 무려 마법까지도 쓰는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 국왕님이 불러서 귀찮게 할까봐 마을사람들에게도, 심지어 나에게도 숨기고 있었다― 을 카알에게 들려주자, 카알은 웃다가 딸꾹질을 해서 물마시다 사례 들려서 콜록거리며 반쯤 죽다 살아나더니 -뭐야 도대체?― 말했다.

“나는 대 현자도 아닐뿐더러 마법을 쓸 줄도 몰라. 국왕님이 부르신다니 아하하”
“그럼 어제 저한테 한 게 뭐예요?”
“글세…… 아하하, 그건 마법이 아니라 마술이라네”

일단 칼의 말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마법이란 자신의 소망을 현실에 구체화 시켜 상황을 변화시킴을 뜻한단다. 그에 비해 마술은 특정 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에 자신의 소망을 현실에 구체화 시켜 상황을 지속시키는 것이고.  

“에에? 소망? 변화? 지속?, 특정조건이라고요? 그게 뭔데요?”
“그때는 차였지”

차? 아! 그럼 그 쓴 물의 각성효과의 지속? 으음…… 그럼 내가 차를 마셨을 때 정신 차리길 바라는 소망을 현실에 구체화 시켜서 그 각성된 상황을 지속시킨 것? 칼은 조용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용하게 웃으며 말하다니, 역시 마법사!?

“그때 위실군이 차를 마시고 정신을 번쩍 차렸었지? 나는 그 상태를 지속시킨 거야”

내 추측이 어느 정도는 맞나봐.

“그럼 마법은 차를 안 마셔도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건가요?”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

으으으음. 마법은 아이템이 필요 없고 마술은 아이템이 필요하단 거? 그래도 둘 다 똑같이 엄청난 일이잖아?

“그 능력, 마술은 어떻게 쓰는 건데요? 아니, 어디서 얻었어요?”

카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업하세나”




날카로운 지팡이의 궤적이 공기를 가른다. 치고 베면서 당긴다. 길게 베지 않고 짧게 치지 않는다.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격에는 망설임을 버리되 욕심도 버려야 한다. 치고 물러서면서 베고 다가선다. 균형을 유지하면서 옆으로 비키고 뻗고 당긴……

“그만”
“이햐아이에으에오우아”

아고 힘들어라. 죽는 줄 알았네.

“잘했다. 위실. 이제 어느 정도 하는구나. 들짐승에게 물려죽을 일은 없겠다”
“에헤헤, 그런가요?”
“두 달 동안, The Fool 내내 훈련을 한 것치곤 성과가 적지만”
“에헤헤”“어쨌든 모레가 출발이지? 훈련은 이걸로 모두 마치마”
“네엡!”
“자, 이게 내 선물이다”
“고맙습니다앗!”

두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The Fool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해는 처음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그랬을까? 아침마다 지팡이를 들고 휘둘렀더니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 감이 온다. 팔에 힘도 좀 붙었고. 늑대 한두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카알의 수업결과는 도통 모르겠다. 지리학부터 시작해서 약초학, 동물학, 암석학, 역사학, 심지어는 웅변술까지 배웠지만 내가 깨달은 건 ‘카알은 박학다식하구나’ 뿐인 것 같다.

“위실?”
“아질다 아주머니”
“모레면 순례를 떠나겠구나? 자아. 이게 내 선물이란다”
“고맙습니다”
“뭘, 준비 잘하거라”

내일모레면 출발하는 날. 전통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이것저것 선물해 주었다. 마음이 담긴 선물들. 그래, 그 마음이야 눈물나게 고맙지만

“위실군. 이 꿩고기는 어쩌실 겐가? 이틀이면 상해버릴 물건을 들고 갈 순 없잖은가? 그냥 먹어버릴까나?”
“......몰라요 나도”

제발 여행에 도움 될만한 물건을 달란 말이다. 고기라면 육포 같은걸 주던가. 지금 나와 카알 사이에는 무시무시한 양의 선물더미가 쌓여있었다. 저 나물들은, 저것도 상해버릴텐데. 저 엄청난 크기의 박을 휴대하라고? 여행하면서?
실용적 물품도 많았다. 반짇고리라던가, 식기라던가. 하지만 식기는 나한테도 있는걸. 반짇고리도, 6개나 주면 어쩌란 거야? 순례 후에 재봉사라도 되란 건가?

“일단 필요한 물품부터 골라내세. 못쓰는 건 내가 아침 일찍 아랫마을에 가서 팔아오지. 어차피 여비도 필요하니…… 왜 그러는가 위실군? 빤히 쳐다보고?”
“에헤헤. 카알, 마법 쓰는 거 한번만 더 보여주면 안 돼요?”
“말했잖은가 위실군. 나는 마법을 못 쓴다니까. 뭐, 마술이라도 보고 싶다면 그 쓴 차를 한잔 더 내올까?”

흥, 치사하긴. 입을 비죽거리는 나를 보고 카알은 웃으며 말했다.

“위실군은 마법사가 될지도 모르지”
“네? 제가요?”
“하하하, 오늘은 집에 돌아가 자지 않을 건가? 마을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내 집에서 자고 가면 무척 아쉬울 텐데”

치잇, 또 말 돌리네. 치사해.




두 달 만에 돌아가는 집이다. 돌아간다 해도 기다리는 사람은 나의 14살생일 이후로 아무도 없지만. 뭐, 덕택에 나는 요리도 잘하고, 빨래도 잘하고, 게다가 청소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다. 모름지기 모든 일엔 좋은 면이 있는 법이야. 슬프고 괴로운 일이라도.
집에서는 먼지 냄새가 났다. 어쩔 수 없지. 새해 첫날 이후로 처음인걸. 에라야-. 오늘 자고나면 1년 동안 안 올 텐데 청소도 귀찮다.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보름은 완전한 불완전함으로 나를 바라본다. 1년 뒤인 건가 이제?




내가 가진 돈 모두랑, 어제 받은 선물 팔아서 카알이 가져다 준 돈하고, 촌장님이 주신 돈을 합쳤는데도 30가실 정도가 다다. 여덟 달 정돈 넉넉하게 살만 해도, 24달을 버티기엔 부족하겠는걸? 뭐, 아끼면 어떻게든 안 될라고. 안되면 가면서 벌면 되고.
떠나는 순간이 다가오니 점점 감상적이 되는군. 내 침대의 삐걱거림도, 지겨운 벽지의 무늬도, 천장도, 창틀도, 창문 밖의 카알의 얼굴도, 눈물이 날것만 같…… 응?

“카알?”
“위실군, 준비는 다 했는가?”
“아……네, 카알, 마지막 달이 뜨면 아무도 만나면 안 되잖아요?”
“그렇지, 내가 왔단 건 비밀로 해 주겠지?”
“카알-!”
“아하하, 그런데 날 계속 세워둘 텐가?”
“아, 들어오세요”

카알이 전통을 어길만한 사람은 아닌데. 무슨 일이야? 순례자가 출발하는 날, 순례자를 축복하는 달이 뜰 때부터는 아무리 가까운 친지라도 -심지어 부모라도- 만나지 않는 게 원칙인데. 어쩐 일이야?

“무슨 일이에요?”
“들려줄 말이 있어서 왔다네”
“예? 왜 지금? 아침에도 왔었잖아요”

카알은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달이 뜨고 나면 아무도 안 올 테니 말이야, 그래서 지금 온 거라네”

어리둥절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며 카알은 말했다.

“두 번 말할 생각은 없고, 돌아오고 나면 쓸모없는 말이 될 테니, 지금 잘 듣게나”

아직 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곧 출발한건데 초가 아까웠다- 떠오르는 보름달을 등지고 앉은 카알은 왠지 무서우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을 지닌 사람 같았다. 그 기이한 느낌 속에서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카알의 말을 들었다. 단어의 뉘앙스 까지, 숨소리 하나하나 까지 모두 기억하려고 노력하면서.




모든 여행자들은 축복한다는 The Fool의 두 번째 보름이 하늘 가운데서 나를 바라본다. 뚜벅 뚜벅 뚜벅. 마을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소로.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다니던 길인데,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기분. 뚜벅 뚜벅 뚜벅. 푸른 달빛은 나무 사이로 쪼개지고 흩여진다. 미세한 체에 쳐진 듯 걸려진 작고 작은 빛의 입자들은 풀잎들과 부딪혀 떠다니며 바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달빛의 바다 속에서 숨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마을 밖으로, 첫 번째 순례지 와테르로, 넓고 넓은 대륙을 향해서, 여행의 첫발을 내딛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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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ey Tarot의 한달은 15일입니다. 각각의 메이저 타로들은 한달을 나타냅니다.(15일)
하지만 The Fool과 The World는 두 달(30일)을 나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