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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단편]양치기소년

2005.04.18 04:04

케테스 조회 수:2584

양치기소년 [지은이: 케테스]


“이런 거짓말쟁이!”
“천하에 짐승만도 못한 바보천치야!”
“머리가 두 조각이 나도 싼 놈!”
추운 겨울, 곳곳에 얼음장이 눈에 띄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겨울. 마을 한 쪽 구석에서 양치기 소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양치기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양치기외에는 별다른 명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사람들이 그 누가 되었든 간에 양치기의 앞을 지나갈 때마다 침을 뱉고 욕을 하면서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양치기 소년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혼자서 무언가를 만족해하고 있었다.
약 두 달 전만 해도 양치기 소년은 지금과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유쾌하고 명랑한 소년이었다. 그는 양치기를 해서 먹고 살았으며, 부모란 존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없었기에 그는 혼자서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양치기 소년이었다.
허나, 어느 날인가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양치기소년은 정체불명의 손님들에게 아주 잘 대접했다. 살이 통통하게 찐 양한마리를 굽고, 나무과일들을 따다가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양치기소년에게서 그럭저럭 좋은 대접을 받은 그들은, 떠나기 전에 양치기소년에게 곧 ‘늑대인간’들의 습격이 있을 거라는 예언을 해주었다.
양치기소년은 어리둥절해했다. 늑대인간이라면 현재 양치기소년의 마을의 주위에서는 전혀 발견되어 본 적이 없는 생물이었다.
그 예언자들은 양치기소년에게 늑대인간들을 물리칠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늑대인간들이 난데없이 마을을 습격하기로 한 이유는 바로 옛날 악마와 이 마을을 세운 자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물론 그 약속 덕분에 이 마을은 주위에 마물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주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수 있었다. 허나, 약속한 날짜가 다되어서 이제는 그 마을이 사라져야 했다.
예언자들은 양치기소년에게 말했다.
“그때 너의 선조가 악마에게 말하길, ‘나의 자손들 중에서 보잘 것 없는 자가 너희들이 나타났을 때, 모든 이에게 신뢰를 얻는 순간 너희는 물러나야 할 것이다.’라고 하며 악마와의 계약을 성립시켰다. 그리고 이제 악마는 그동안 말랐던 목을 축일 기회를 얻은 게지.”
예언자들은 잠시 마을을 쳐다보더니 마지막 말을 이었다.
“그들이 나타난 순간 마을사람들에게 알려라. 그들이 너를 세 번 신뢰하는 순간 악마는 다시 한번 계약의 기간을 늘릴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라. 신뢰를 받고 나서 일주일안에 너는 사람들이 너를 불신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다. 그것을 조심해라. 만약 지키지 못하겠거든 신뢰를 세 번 얻은 순간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할 말을 모두 마친 그들은 길을 떠났고, 양치기소년은 남아서 어떻게 할지 궁리하게 되었다.
‘어떡하지? 그놈들이 나타나면 늑대인간이 나타났다고 해야 하나? 아냐, 늑대인간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그래! 그냥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면 되겠네!’
양치기소년은 고민에 고민을 더해서 어떻게 하면 신뢰를 얻고 그들을 물리칠 수 있을지 열심히 연구했다. 그리고 어느새 예언자들이 말한 그 날이 오게 되었다.
숲은 그날따라 조용했다. 항상 지저귀던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을 뿐더러 동물들조차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양치기소년마저 그런 분위기에 동화된 듯이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조용히 양들을 돌보고 있었다.
양치기소년이 숲을 계속해서 힐끔힐끔 거리고 계속해서 관찰한 것만도 5시간 정도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냥 정신병자들의 장난이었나?’
양치기소년이 그렇게 단념하려던 찰나.
#부스럭.
“…!”
숲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귀에 들어간 순간, 양치기소년은 빠르게 숲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아니나 다를까, 검은 털에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늑대인간이 숲 속 깊은 곳으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양치기소년은 예언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챈 뒤, 재빠르게 계획했던 대로 마을을 향해서 커다랗게 외쳤다.
“늑대가! 나타났다!”
마을사람들은 양치기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에 모두 각각 무기를 하나씩 들고서는 목초지로 달려 나왔다.
“뭐? 늑대가 나타났어?”
“늑대는 어디 있냐?”
양치기소년은 부리나케 달려온 마을사람들에게 숲을 가리키며 늑대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었다.
“어라?”
하지만 이게 웬일? 그곳에 있던 늑대인간들이 흔적도 없이 전부 사라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숲을 어느 정도 살펴본 뒤에 양치기소년에게 다시 나타나면 좀 더 빨리 알리라고 말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자 양치기소년은 다시 숲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에는 늑대인간이 다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번 뛰쳐나왔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조금 줄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늑대인간들은 사라져있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 늑대인간은 또 다시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양치기소년은 사람들이 제발 한번만 더 자신을 신뢰해주기를 빌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이번에도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하지만 숫자는 줄어있었다.
“도대체 늑대는 어디 있는 거냐?”
“아까부터 계속 안보이잖아!”
사람들은 이번에도 허탕만 치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 양치기소년은 기뻐했다. 그가 마을을 구한 것이다.
늑대인간들이 사라지자 숲에는 다시 새소리가 잦아졌다. 그리고 동물들도 슬금슬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토끼, 사슴, 멧돼지 그리고 늑대…늑대?!
늑대였다. 늑대인간은 아니지만 분명 늑대 한 마리가 양을 물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이번엔 진짜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양치기소년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저 거짓말쟁이 또 시작이구먼.”
“에라, 혼자서 즐기라지. 나는 자련다.”
그리고 마을은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고, 양치기소년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허나, 그는 거짓말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다 저주받은 마을에서 살아남은 자라서 아직 저주를 벗지 못했을 것이라 여겨져 사람들이 업신여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쁜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을 한번만, 한번만 더 믿어보면 어떨까?
혹시 알까? 그 한번의 믿음 당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