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눈물 - [Tear of Soul]




격한 숨소리와 급한 발소리가 쏟아지는 빗소리에 삼켜졌다. 손끝도 희미하니 덜 짙은 어둠에 지나지 않는 숲 속의 밤. 쉴 새 없이 내려붓는 빗줄기는 끊임없이 어둠을 일렁이게 했다. 시계가 0에 가까움에도 소유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길을 소유는 쉬지 않고 달렸다. 내재된 위험은 넘어지는 것 정도가 아니다. 조금만 길에서 벗어나면 나무를 들이받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유는 그런 위험 따위 아무렇지 않은 듯 달렸다. 아니 생각할 여유도 없음이 옳은 표현일지도. 철퍼덕. 길은 벗어나지 않았지만 발  밑의 진흙 또한 보이지 않는 방해물이다. 부러진 곳은? 아픈 곳은 발목? 접질린 정도이군. 다시 일어나서 달려야… 번쩍! 온 세상이 백색으로 타올랐다. 빛 자체를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의 검은 그림자들. 찰나의 시간이지만 찰나의 빛이기에 그 잔상은 더욱 길었다. 소유의 눈앞에서 일그러진 얼굴이 웃었다. 아니 비웃음 지었다. 빗자국과 넘어지면서 묻은 진흙이 만들어냈을 모습인데, 단지 그 뿐인데도 소유는 멍하니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어두운 숲속에서 내리는 빗속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악마의…… 콰드드등! 천둥이 세상을 울렸다. 소유는 순간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소유는 다시 달렸다. 빗줄기는 거세어만 갔다.



“누구냐?”
“소유입니다. 가람님”
“들어오라”
집 안에는 촛불하나 없다. 오히려 바깥이 더 밝은 것 같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가람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들려오는 것은 빗소리와 자신의 격한 숨소리. 그 숨소리에 소유는 질식할 것만 같다.
“무슨 일이냐, 이토록 늦은 시각에”
황금색 눈동자가 소유를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소유를 꿰뚫는 듯 했다. 날카로운 눈매는 인간의 그것이라기보다는 흡사 범의 그것 같다.
“그녀를, 사녀를 살려주십시오 가람님. 제발, 제발!”
가람은 불을 밝혔다. 미약한 소리도 없는 움직임. 푸르스름한 불꽃이 타올랐다. 그 아래에서 가람의 푸른 입술이 더욱 도드라진다.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녀의 명임을”
“그녀와 함께하는 세상 외에는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저에게도 죽음을 주십시오”
자그마한 한숨이 불꽃을 일렁였다. 약간의 고갯짓에 초록 머리칼이 물결친다. 고개를 숙인 채 가람은 조용히 말했다.
“그토록 바라는가”
“네?”
“따라오라, 너의 바람을 이루어 주겠다”
“저, 정말입니까?”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가람을 따라 들어간 방 안에서 소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의 한 벽을 가득 차지한 약장 안에는 빽빽하게 약병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각각의 병들은 각각 색색의 빛을 은은히 뿜고 있었다. 지독한 어둠속에서도 방안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별세계와 같은 곳에서 멍하게 서있는 소유를 내버려둔 채 가람은 약장의 제일 꼭대기로 올라가 병을 꺼내들었다. 결점하나 없는 거대한 수정을 통째로 세공했는지 병은 큼지막하면서도 이어진 부분 하나 없었다. 병의 겉면엔 화려한 글씨로 Tear of Soul 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안에는 1/3 정도의 붉은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놀랍게도 초록빛이었다. 홀린 듯 바라보는 소유에게 가람은 말했다.
“마셔라”
“무, 무엇입니까?”
“너의 바람을 이루어 줄 테지. 아니 아니, 너를 죽이는 약이 아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셔라. 그것밖에 남지 않은 약이니 부족하다면 더 이상 마실 방법도 없다”
“저, 그, 그렇게 귀중한 것이라면 제가 무엇을…”“걱정마라. 네가 스스로 행한 것이 나의 대가가 될 것이다”
소유는 머뭇거렸다.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주저하게 했다. 어째서? 이것이 그녀를 살리는 길인데? 초록빛이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는 볼수록 신비로웠다. 정말 마법의 약인가. 가람의 푸른 입술이 움직였다. 황금색 눈동자 속에는 어떤 감정도 없이 다만 소유가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바란다면, 마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