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녹이고 두드리고 죽음과 죽음과 죽음이 반복되는 가운데 칼은 태어났으리. 열기에 몸이 녹고 망치와 모루가 끝없는 인내를 강요하는 가운데 태어났으리. 포기라는 이름의 달콤한 유혹이 차가운 담금질에 사정없이 깨어져나간 끝에 드디어 태어났으리. 화려한 세공과 장식은 이미 태어난 후에 입혀지는 치장에 불과한 것, 세상을 울리는 칼의 노래는 그렇게 이미 킬의 죽음속에서 완성된 것일테다.

장인도 모른다. 칼을 품어낸 어머니 장인조차 자식이 어떤 노래를 부를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터. 300번의 낙엽과 300번의 첫눈을 바라보며 침묵의 곡조를 쓸쓸한 어둠을 배경으로 뿜어낼지, 아니면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 뜨겁기 그지없는 격렬한 선율을 그 어머니의 몸을 배경으로 풀어낼련지. 장인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장인은 칼의 노래를 지휘할 수 없다. 칼의 노래는 그 스스로 토해내는 울음이다.

때로 칼의 노래는 짧다. 격렬하다. 뜨겁다. 그리고 아무리 오래 식어 있어도 그 노래는 죽지 않는다.  단 하나의 음을 토해내기 위해 깊고도 깊은 숨을 준비하는 칼의 노래는 마치 화산과도 같다. 하루, 일년, 한 세기동안 들려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칼의 노래는 죽은 것이 아니다. 칼의 노래는 사정없이 예리하다. 누구의 손을 맞잡고, 누구와 더불어 노래를 시작하는가. 오랜 시간동안 계속 울려퍼진 노래에 모두가 전율하는 것은 칼에 어울리지 않는다. 단 하나의 음계, 단 하나의 춤사위, 찰나와도 같이 울려퍼진 노래가 울리는 것은 한명일 수도 있고 혹은 한 나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칼의 노래가 가지는 예리함이다.

지금 내 손에서 침묵하는 이 칼이 내일 어떤 곡조를 읊을지는 나조차 알 수 없다. 그 노래는 지휘할 나 조차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내가 이끌긴 하겠지만 결국 노래는 이 칼이 부를테다. 나라를, 시대를 울릴 것인지 혹은 그 감동속에 나를 묻고 긴 여운만을 남길 것인지. 바라건데 수 세기를 기다려 온 이 노래를 내가 내일 들을 수 있기를. 그리고 영원히 들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