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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상상연작] 그의 본심

2006.11.27 22:01

조회 수:1677



 마을 변두리의 다 쓰러져가는 낡은 나뭇더미. 하지만 사람이 둘이나 들어와 앉고도 얼마간의 공간이 남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이 나뭇더미의 안쪽은 주거공간인 듯 하다.

"저어…"
"대체 왜 그러는가?"

 어려운 질문인 듯, 머뭇거리는 청년의 말에 청년과 마주앉은 중년이 신경질적으로 답한다.

"이 칼을 봐주셨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조용히, 다 죽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청년이 말한다. 말하며 청년은 무엇인가를 중년의 사내에게 '누가 보기라도 하면 큰일 날 물건'인 양, 슬며시 내민다. 검은 천에 돌돌 싸여 있어 내용물은 알 수 없지만, 크기는 손바닥을 펴서 가운데손가락 끝부터 손목까지정도의 길이를 가진 물건이다. 청년의 말대로라면, 이는 필시 이만한 크기의 칼일 것이리라.

"뭔가? 이건?"

 어느정도는 짐작하고 있을 터인데도, 짐짓 모른다는 듯 중년이 청년에게 묻는다.

"……."
"원, 사람. 싱겁기는."
"……."

 청년은 침묵으로서 답한다. 그러자 중년은 얼굴에 묻어있던 짜증기를 거두며, 돌돌 말린 검은 천을 풀어 헤친다. 풀어헤친 검은 천 안에는 찬란한 광채와 함께 화려한 장식이 붙은 칼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이건?"
"그러니까, 칼입니다. 좀 봐주셨으면 해서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해서인지, 아니면 칼이 내는 광채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청년의 목소리는 약간 상기되어 있다. 그에 반해 중년의 표정은 점점 싸늘하게 식어간다.

"자네, 이걸 작품이라고 가져온건가?"

 중년은 분노에 찬 듯,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고 숨이 가빠졌으며 청년을 응시하는 눈은 경멸을 담고 있다. 그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생명을 앗아가는 칼에 장식이라니, 최저로군!"
"……."
"애초에 칼이라는 것은 무언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목적인 도구이거늘, 그것에 장식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살행(殺行)을 저 찬란한 금빛처럼 자랑스럽게,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말이 아닌가!"
"……."
"사람뿐 아니라 금수, 심지어는 풀 한 포기도 생명일진데 이런 만행을 저지르다니…!"
"……."

 말이 이어질 때마다 점점 중년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과열된 기계'처럼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과격한 말에도 청년은 침묵만을 지키고 앉아있다. 중년의 말에 깨달음이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그의 표정은 처음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중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이윽고, 그가 말문을 연다.

"어르신."
"…!"

 계속 침묵만을 고수하던, 소심하게만 보이던 청년이 갑자기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중년은 당황한 듯하다. 그러나 곧 평정심을 찾았는지, 청년의 부름에 응답한다.

"왜 그러나?"

 목소리는 아까보다 많이 가라앉아 있고, 안색도 괜찮아진 것이, 분명 평점심을 되찾은 모양이다. 청년이 더욱 또렷하게, 아까의 그 소심한 청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또렷하게 말을 계속한다.

"풀 한 포기, 흙 한 줌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생명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펜의 장식, 술잔의 장식, 그리고 왕궁 앞의 석상들은 어떻습니까?"
"응?"

 뜬금없는 질문. 중년은 청년의 질문이 그렇다고 느낀다. 그러나 중년의 대답여부는 애초에 상관하지 않았다는 듯, 청년은 말을 계속할 뿐이다.

"펜이라 함은 종이에 휘갈겨 글을 쓰는 것입니다. 종이는 나무로 제작되므로 나무의 환생. 그 나무의 육체를 찢어발기고 긁어대며 상처를 입히는 것이 펜입니다. 그런 펜에 장식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음?"

 중년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칼로 생명체를 찔러 목숨을 빼앗는 것과, 펜으로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게 비교대상이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청년의 말은 계속된다.

"그리고 술잔. 포도주를 예로 들겠습니다. 포도주를 만들때는 포도를 사용합니다. 즉, 포도주라는 것은 포도의 혈액을 짜낸 것이지요. 그 포도의 혈액을 우리는 마시고 있습니다. 포도는 식물이지만 식물 또한 생명일 터, 생명체의 혈액을 짜내어 마신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길래 술잔에 치장을 합니까?"
"……."
"그리고 왕궁 앞의 석상. 분명 돌에도 생명이 있을진데, 어찌하여 그것을 깎고 또 깎아 저렇게 아름답게 꾸미는 것입니까? 그것이야말로 시체를 꾸미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

 중년의 말문이 막힌다.

"이 칼도 마찬가지입니다. 칼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빼앗을 뿐, 다른 것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

 청년은 '내가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숨을 고른다. 청년의 표정이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데에 비해, 중년의 표정은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다. 주위에는 청년의 숨 고르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중년은 미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본다.

"……."
"……."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킨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중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뭔가? 그 칼이 최저라고 했던 말을 사과하란 말인가?"
"……."

 이번엔 청년의 말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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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에 대해서 써보려다가, 좀 진부하다고 느껴 다른 내용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주 내용은 '칼의 가치가 폄하되어 기분이 나빠진 청년의 궤변'입니다.
 즐겁게 감상하셨다면 다행이군요.

※사실 숨겨둔 '의미'가 하나 있습니다. 찾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