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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아까와는 달리 기분좋게 잠에서 깬다. 역시 잠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좋은 것이야...... 그런데 내가 안고 있는게 좀 다른것 같다...아니, 많이 다르다. 의아함을 느끼며 두 눈을 뜬다. 내가 안고있던 부드럽고 따스하고 말랑한 물체는 상반신을 일으킨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것은...? ...부드럽고 따스하고 말랑한 물체의 하반신이로군... 부드럽고 따스하고 말랑한 '여인'을 올려다 본다. 여인이 저 하늘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꼭 뭔가를 갈망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런 여인에게 내리쬐는 햇빛...꼭 신화속에서나 나오는 성녀(聖女)같다. 여인은 고귀하고...숭고하고...성스러워 보인다. 너무나도 아름다워...감히 건드리질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여인을 꼬옥 끌어안고 있는 나는...?) 여인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얼마나 오랫동안 여인을 바라보고 있던 것일까... 갑자기, 천천히 여인의 고개가 내려간다. 여인의 눈동자와 내가 마주친다.
눈동자...여인의 진한 붉은 눈동자...... 감정이 없는...그러나 핏빛의 깊디깊은 눈동자...너무 아름답다...어떠한 보석보다도 아름답다... 이렇게 지속되는 어색한 침묵... 여인의 입이 벌리고, 침묵은 깨어진다.
"...잘...잤어...?"
여인의 눈동자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린다. 아아...답례를 해야지...
"아,네...덕분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물끄럼 나를 바라본다. 여인의 아름다운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갑작스레, 온몸의 세포가 경고를 보낸다. 심장이 크게 뛰고 나의 동공이 확대된다. 머리카락이 쭈빗거리고 몸에 소름이 돋는다. 살...살기!? 순간 여인이 내뱉는 말은...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직전의 아이 목소리 같다.
"...그래?...그렇다면...이제...아까 내 가슴을 만진 대가를 치뤄야겠지?"
죽음!? 죽는다!? 이러한 느낌...여러 번 접해 봤지만...역시 익숙지 않다.
죽는다...죽는다... 심장이 터질듯 숨가쁘게 뛴다. 식은땀이 흐른다...
"...그전에...애국가...알지? 대한민국 애국가. 한번 불러봐."
두려움의 바다 속에서 의아함이 피어오른다. 이런 상황에 갑자기 왠 애국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은 여인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죽을 가능성이 줄어드니까...... "도...동~해~물과~백~두~산~이..."
...정말...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황당하게도 살기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애국가를 불러보기는 처음이다. 이 새로운 경험을 겪는데 있어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마~르고 닳~도록~...하~나님이..."
"그만,그만. 이제 됐어. 이제 그만 불러도 좋아." 일단 노래를 그만 두기는 했다. 헌데 어째서? 지금 상황에서 애국가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의아함 속에 여인은 간단하게 답을 제시한다.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끔찍하디 끔찍한 말을... "자아...그럼 이제 당신 말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한번 맞아봐라." 순간 지금까지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과연...살아남을 수 있을까...?

 

퉁퉁 부어오른 채(삐진채) 헤드셋을 착용한다.
그렇다.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이렇게 무사히 살아 남아서 헤드셋을 착용한다.(정말...정말 죽는 줄 알았다...) 곧이어 눈앞이 새까매 지더니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푸른 바다위에 떠있는 하나의 섬......
엘-하자드... 나는 지금 현재 잠자고 있을 여인을 뒤로 한 채 엘-하자드의 세계로 떠난다.

 

...그레이브(Grave)는 조용히 눈을 뜬다. 웅성웅성... 시끌시끌... 화려함이 넘쳐나는 도시...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보기에도 귀티가 팍팍 넘쳐 흐르는 사람들, 찢어지게 가난한 듯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너무 화려해서 생기가 팍팍 넘쳐 흐르는 것 같다. 그래...생기가 팍팍 넘쳐 흐르는군...아, 한 국가의 수도여서 그런가? 그래...생기가 넘친다는건 좋은 것이지...하지만...이렇게 생기가 넘치고 화려한 도시일 수록 그에 상응하는 마이너스 요소도 큰 법이지... 특히 이렇게 큰 수도라면...흐음...안봐도 뻔히 알겠군... 그 때, 그레이브의 옆으로 한 미녀가 다가온다.
긴 흰머리를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린...하얀 하프 로브(Half Robe)밑에 보라색과 흰 옷을 입은... 달의 지팡이(Staff Of Moon,지팡이 끝에 초승달이 조각되어 있는 지팡이.)중심에 떠다니는 보라빛 크리스탈...마법사(Wizard)의 복장치고는 좀 특이하다 볼 수 있는 그러한 복장이다.
하지만...엄청난 미녀. 무감정한 외모에 무감정한 눈빛은 이 여인에게 섯불리 접근을 금지한다. 그러나 그레이브는 이 미녀를 잘 아는듯이 손을 흔들며 말한다. "아, 레. 이곳에 있었군요."
레...라고 불린 여인은 조용히 그레이브의 옆에 선다.
그레이브는 그런 레를 보며 살짝 웃는다. 레는 그레이브를 힐끗 보더니 살짝 고개를 돌린다.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흐른다. 그러나 이 둘은 이런것에 익숙한듯 별 반응이 없다.
자신들이 서있는 도로 반대편에 파티(Party,경험치,혹은 다른 무언가를 위해 뭉친 집단.)가 보인다. 순간, 그레이브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아...그러고보니...나도 파티가 필요해. 그 사람에게 부탁한다는걸 잊고 있었어...기억이 난 겸 지금 부탁 해봐야겠다."
그레이브는 메세지 창을 띄운다.


이벤트(Event)운영자 로베르트.알렉산더 슈우만『R.Aleksander schumann』님께.
안녕하십니까. 이벤트 운영자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우만님. 저는 다름이 아니라 저스티스(Justice, 게임내 해킹,에디트,치트 플레이어 혹은 부정한 짓이나 정의에 위반되는 짓을 행하는 플레이어들을 처리하는 운영자.)중 한 사람인 시크릿ㆍ그레이브(SecretㆍGrave)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우만님께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한 이벤트를 부탁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게임내에 부정한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아 제가 운영자라 해도 저 혼자의 힘으로는 무수한 사람들을 동시에 처리하기가 곤란합니다. 해서 저를 도울 파티원들을 선발해야 하는데.......(중략)...해서 이렇게 해서 이렇게 좀 해주셨으면 정말 감사겠습니다.
                                                          - 저스티스계 운영진 시크릿ㆍ그레이브 -



메세지를 보낸 그레이브는 한숨을 내쉰다. 자아...이제 천천히 답장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은...뭐...자신에게 주어진 엘-하자드의 정의를 위해 돌아다녀야 하나...?
"...레?"
레가 보이지 않아 주의를 두리번 거리다 벽 한쪽에 쪼그려 앉아 졸고있는 레가 보인다. 그레이브는 그런 레를 멍하니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당분간...여관에서 묵어야 할 지도......" 잠이 들어버린 레를 조심히 업고는 여관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그레이브... 이렇게...엘-하자드의 위대한 전설, 영원을 바라는 노래는 아주 평범하게...조용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아주 평범하게......
"헛! 그러고보니 여관에 숙식할 돈은 남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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