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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상상연작] 정류장

2006.12.25 01:14

네모Dori 조회 수:1743




버스가 온다. 사람이 내린다. 사람이 탄다. 버스가 간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아직 해는 채 뜨지 않아 세상은 어두컴컴하다. 쌀쌀한지 연신 발을 구르며 손을 비빈다. 웅크린 몸으로부터 하얀 김이 퍼진다. 그르릉. 땅을 울리는 소리가 저 편에서 들려온다. 환한 헤드라이트가 깜빡이더니 땅을 더듬으며 다가온다. 푸슈욱. 버스가 신음을 토한다. 그르르릉. 다시 땅을 울리며 버스는 멀어져 간다. 점차 저편이 밝아온다. 하루의 시작이다.

양 손에 잔뜩 짐을 든 여자가 내린다. 힘든 숨을 내뱉는데도 앉을 자리 하나 없다. 땀을 훔치더니 짧은 숨을 들이키고는 다시 떠난다. 이럴 때 의자라도 하나 있었으면. 걸어가던 여자가 골목으로 들어간다. 다시 아무도 없다.

이따금 차들이 지나간다. 그네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잠시 멈칫 하지도, 눈길을 던지지도 않고 그저 지나간다. 바쁜 그네들의 일상에 내가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다. 먼바람이 또 한번 나를 쓸고 지나간다. 켜켜이 쌓인 자리에는 더 이상 머물 틈도 없다.

서산에 걸렸던 해가 가라앉는다. 그 소리에 맞춰 저 편에서 다시 그르릉 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의 그가 다시 돌아왔다. 가득 찼던 바구니는 깨끗이 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의자라도 있었으면. 다시 한번 후회해 보지만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차가 떠나간다. 그도 다시 떠나간다. 겨울의 해는 짧다. 세상은 어둠에 잠긴다.

바람이 분다. 따닥따닥.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가 부딪힌다. 해 진 정류장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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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졸래 부끄러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