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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낙타

2006.10.24 06:12

네모Dori 조회 수:1696





내가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속 없는 웃음과
이제 그만 이라는 말 뿐이었다.

왜 다른 말은 한마디도 못했을까. 좋은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라리 친구이기를 고집했으면 계속 좋은 친구였을까. 왜 다시 친구가 되었는데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된 것일까.

눈이 내린다. 창 밖을 단색으로 덧칠해버리는 눈이 내린다.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눈이 내린다. 1024년, 12월의 겨울이 그렇게 지나간다.

********

네카는 나이프를 집어들었다. 달라질 일상은 없다. 다만 오늘따라 왼손에 든 나무 덩어리가 묵직하게 느껴질 뿐이다. 매일 덜어내고 있는데 왜 점점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걸까.

네카는 조각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정교하게 묘사되어질 낙타가 내 손안에 있다. 왜 낙타를 깎고 있을까? 아니, 이젠 깍을 의미가 없지 않은가. 네카의 웃음이 쓰다.

********

사막에 가 본 적이 있어?
갑자기 왜?
그냥.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날 따라온 바람에 의해 지워지는, 모래의 섬 속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은 어떨까.
감상적인데?
헤헤헤.

네카는 손에 든 나무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올때는 어떻게 나와?
낙타를 타고.

********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린다. 마당 앞까지 들어섰던 봄을 산 너머로 내 몰만큼. 산 중턱에 위치한 네카의 오두막은 아랫마을과 단절된지 오래다. 시월의 초겨울 칼바람보다, 십일월의 한겨울 얼음송곳보다 12월 늦겨울 맺음 눈이 더 매서웠다.

항상 타닥타닥 타고 있는 장작불과 가끔 바람따라 떨리는 창문. 그리고 사각거리는 나이프의 움직임만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

결국 문제는 그것이었어. 나는 좋아했지만 사랑하지는 않았어.
그래서 뭐가 미안한데?
모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정말?
정말.
진짜?
진짜.
정말로?
그래.

********

거침 없이 움직이던 나이프가 점차 조심스러워진다. 손 안의 그것은 낙타는 아니지만 낙타가 아니라고도 못할 만큼 이미 제 생명을 얻고 있었다. 몸을 내가 깎아주면 혼은 어디서 구할텐가.

********

왜 내가 말만 하면 웃어? 내가 그렇게 좋아?
하하하, 글쎄. 그렇다기보단 그냥 버릇이야.
버릇?
삶의 방식이랄까? 자기 방어의 수단이었던 웃음의 가면이 이젠 나 자신이 되어버린거지.
그건 자기 비하야.
하핫, 그럴까?

내 손 안의 낙타는 웃고 있다.

********

함께였을 때 새롭게 생겨난 혼에게서 그 이전부터 자라오던 혼이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 지금의 고통, 괴로움, 슬픔, 분노, 후회, 좌절은 모두 그 다툼 탓이다. 다시 제 혼이 자리잡으면 모두 사라지겠지. 고통, 괴로움, 슬픔, 분노, 후회, 좌절 모두. 혼자였을 때 그 때처럼.

그러면 함께 였을 때 태어난 내 새 혼은 어디로 가야 하나?

********

세심한 손이 지나간 자리에 얕은 선이 생겼다. 그 위로 확고한 손이 지나가며 선은 조각이 된다. 마무리 잔 손질마저 얼마 남지 않은 낙타는 이제 한 손으로 들기엔 버거울만치 무겁다.

네카는 낙타의 눈을 마무리 짓고는 그 큰 눈망울을 응시했다. 긴 속눈썹과 깊은 눈꺼풀 밑의 큰 눈망울은 울고 있었다. 웃고 있는 입과 울고 있는 눈. 참 기묘한 표정이다.

네카는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

내리던 눈이 그쳤다. 네카는 문 밖으로 나갔다. 세상은 함께 희다. 네카는 온데 흰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산 아래에서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쳐 불었다. 털썩. 한 무더기의 눈이 떨어지며 은빛 눈가루가 비산했다.

네카는 마을로 향했다.

길게 남겨진 발자욱 뒤에서 낙타가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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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릴레이를 여기다 올릴까 했는데, 이미 40화나 쓴걸 올리려니 또 그래서, 그냥 그동안 습작 비스무리 써놨던거나 올립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전 감사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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