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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마고

2006.10.24 06:14

네모Dori 조회 수:1585

마고



  
어느 날 밤, 마고는 잠을 깼다. 검은 하늘 한 가운데 별이 반짝였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그 별을, 마고는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뭐하자는 건데?”

k의 목소리는 언제나 억양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k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이 녀석은 마치 컴퓨터 같다. 질문을 입력하면 언제나 해답이 나오는. 다만 그 해답은 신선함이 없는 언제나 뻔한 것일지라도.

“마시자는 거지. 정확하게 말하면 핥고 마시고 빠는 건가?”

k는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자신의 블랙러시안을 홀짝였다. 하긴, 언제나 이 녀석은 내가 예상한 이상의 행동은, 말은 보여주지 못했지. 어딘가 막혀버린 녀석. 하긴, 그러기에 지금 내가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만약 내가 k였다면 나 같은 건 예전에 잊어버렸겠지.

“웃기지 않냐? “

“뭐가?”

“블루마가리타가”

k는 다시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고마운 녀석.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내 말을 듣기만 하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존재. 그래,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지. k에게 연락한 것은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의 선택이었나 보다. 적어도 k는 내가 기대한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대로를 해주고 있으니까. 오른손을 차갑게 물들이는 블루마가리타. 칵테일에 취하려면 몇 잔을 마셔야 할까?




마고는 잠들지 않고 밤을, 밤하늘을 기다렸다. 잠깐의 기다림이 끝나고 어두운 밤이 다가왔다. 마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때의 그 별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반짝이지 않았다. 마고는 두 손을 모아 별을 불렀다. 별은 반짝이지 않았다. 눈물이 방울져 흘렀다.




바의 구석에 자리 잡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항상 함께 노닥거려주던 바텐더도 내가 말없이 구석에 가서 앉아 더 이상 관심을 보내주지 않는다. 역시. 이래서 단골이란 좋은가보다. 만약 테이블에 앉았더라면 그때는 k가 부담스러워졌겠지. 눈앞의 바텐더와도, 바로 옆의 k와도, 닿아있되 고립된 공간. 보이나 보이지 않는 이어도 마냥. 그래, 내게 필요한 것은 이거야. 의지와 상관없이 입이 열린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뭐라고?”

“밤이 되면 도통 잠이 오지 않아. 잠들고는 싶은데 누우면 되레 정신이 맑아져버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 한두 번 그러고 나니까 이젠 낮이 되면 시체마냥 잠들어버려. 그럼 다시 밤에 잠들지 못하는 거지. 끝없는 악순환이랄까”

“무슨 헛소리야”

“보름째야”

“응?”

“보름째 밤에 잠을 자지 못했어”
정신이 다시 맑아온다. 오른손에 들린 잔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 손등을 적신다. 차게 깨어나는 세포. 나도 블랙러시안이나 마셔볼까. 아니면 마티니?




마고의 눈물에 별이 다시 반짝였다. 마고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분명 희미하지만 별은 반짝였다. 마고는 다시 두 손을 모아 별을 불렀다. 별은 더욱 아름답게 반짝였다. 마고는 눈물을 닦아내는 것마저 잊은 채 멍하니 그 별을 바라보았다. 별이 지고 다시 날이 밝아올때까지 마고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든지 힘든 건 첫 번째지. 세상 일이 다 그렇지 않냐? 두 번째는, 실제론 더 힘든 일이 라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 뭐든지 두 번째부턴 무덤덤해지는 거지”

k는 이제 짤막한 대꾸마저 않는다. 흔들리는 촛불은 검은 연기를 조용히 피워 올린다. 가끔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k가 옆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k가 옆에 있으니 나는 중얼거린다.

“암시와 복선은 효과적인 장치야. 아무리 아름다운 스토리를 생각해내어도, 아무리 창조적인 스토리여도 그저 결말을 짠하고 드러내면 누구도 납득하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암시와 복선은 얼마나 매력적이야? 필연성이 없는 결말마저, 어이없는 내용일지라도 그냥 납득시켜버리지. 일말의 의심조차 날려버리고, 결말에 저항할 수 없게. 잔인한 도구지”

얼음이 짤랑이는 소리가 조금 더 자주 들려온다.




어떻게 하면 저 별을 나만의 별로 만들 수 있을까? 마고는 고민 끝에 큰 활을 만들었다. 큰 활에 먹일 큰 화살도 만들었다. 밤이 다가왔다.




“같은 걸로 한잔 더요”

얼마 만에 k가 입을 열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태우던 초의 검은 연기도 흔들렸다. 이것과 저것, 그리고 얼음. k의 앞에 다시 블랙러시안이 한잔 자리한다. 나도 블루마가리타를 한잔 더 주문한다. 이것과 저것, 그리고 얼음을 갈아서 함께 섞는다. 새하얗게 부서진 얼음이 파랗게 물들어간다. 쉽게 섞이고 쉽게 물들어버린다. 소금과 레몬의 맛은 강렬하게 혀를 마비시킨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차가움.




마고는 활을 들어 별에게 보여주었다. 별은 반짝여주었다. 마고는 큰 화살을 메겼다. 마고는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




작은 컵에 담긴 작은 초는 계속 흔들리는 불꽃을, 흔들리는 연기를 피워 올렸다. 저토록 오래 타는 걸 보면 분명 저 초는 침묵을 살라먹고 있을 테다. k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문다. RAISON, 푸른 고양이. 딸깍. 따스한 불꽃을 품은 지포가 푸른 고양이를 태운다. 저건 푸른 연기다.

“맛있냐?”

“설마”

“근데 왜 피냐?”

k는 물었던 담배를 손에 들고 생각에 잠긴다. 푸른 연기는 똬리를 틀며 저 위 어딘가로 흩어지고 한끝의 재는 아래로 낙하한다. 연기는 위로 재는 아래로. k는 닫혔던 입을 다시 연다.

“말하기 힘들지만 그럴 때가 있어. 왠지 지금은 담배가 정말 맛있을 것 같은. 물어보고 나면 전혀 맛있지 않은데 정말 이번만은 맛있을 것 같지”

의미 없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k의 RAISON은 너무도 향기로운 연기를 태운다.




마고는 시위를 놓으려다 말고 활을 내렸다. 화살촉은 너무나 뾰족하고 날카롭다. 마고는 촉을 제거한 화살을 다시 활에 먹였다. 별은 반짝였다. 화살은 손을 떠나 하늘로 날았다.




“조심해서 들어가라”

“그래, 다음에 또 연락할게”

“그래라. 다음에 보자”

사람들 속으로 k는 사라져갔다. 결국 사람을 불러놓고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하긴 언제나 이랬다. 처음은 아니지. 우웅. 휴대폰이 울린다. k의 문자다. 녀석. 웃긴 녀석. 잘 들어가란다. 정말 웃긴 녀석. 바로 향하는 계단이 나를 부른다. 애써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왠지 오늘은 간만에 잠이 올 듯 하다. 그런데 오늘은 밤을 새고 싶은 기분이다.




화살은 하늘을 가로질러 별에 가 닿았다. 별은 이제 마고만을 위해 반짝였다. 마고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갑자기 별의 반짝임이 다시 약해지기 시작했다. 마고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깊게 박히지 못한 화살이 땅으로 떨어졌다. 이제 별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검은 밤 한가운데서 마고는 그저 잠들었다. 이젠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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