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게시판
  • 유머 게시판
  • 질문/답변 게시판
  • 정보/강좌 게시판
  • 소설 게시판
  • My Games Top 10

소설 게시판

낙엽지는 가을에

2005.11.15 09:12

네모Dori 조회 수:2149





[ 05. 10. 14. 18:22]
    [ 발신번호 ]
[ 010307149XX ]
   [메시지 내용]
[일요일 9시 도서관 4
층으로 오시오 / 진우]
<이전 : 뭐 그런
다음> : ♡ 파사

“우리 영이 뭐하세요?”
“아, 깜짝이야. 놀랐잖아”
“헤에 웬 문자? 진우 폰 없잖...”
“아무것도 아냐!”
아영은 급하게 폰을 덮었다. 그런 아영에게 선화는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아. 좋을 때지. 거럼거럼. 저를 데려가실 낭군님은 어디 없으시나요”
“뭐, 뭐라는 거니!”
까르륵 웃으며 멀어저 가는 선화를 보며 아영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낭군님은 무슨. 폰이라도 사지. 매일 친구한테 빌려서 보내고. 답장도 못하게. 아영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이 아니 이젠 겨울이 다가오는지 벚나무는 봄보다도 더욱 붉은 색을 띄었다. 2학년 까지만 해도 친구들끼리 학교 뒷산에 단풍놀이 가고 그랬는데 이젠 계절이고 뭐고 없다. 그저 달려가는 기분이다. 물끄러미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아영의 얼굴에 미소가 진다. 일요일 9시?





진우는 책상 위에 놓여진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10월도 다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곧 11월인가. 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학교에서 하는 야자를 안 나간 지는 꽤 되었다. 진우는 점점 답답해져 가는 교실의 분위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딱히 하는 것도 아니지만. 진우는 손에 든 담임이 나눠준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았다. 공부에 소홀했는지 언외수는 괜찮은데 사탐이 작살이다. 진우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곤란할 것도 없다. 늘 해왔던 대로 우리말 큰 사전 안에 넣어 버릴 테니까.
“하아. 이래도 되는 건가”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너무 태연하게 사전을 뽑아드는 자신을 보며 진우는 지행합일 양명학 명 청시대의 중국 관학은 성리학 등등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비웃는다. 진우의 시선이 다시 달력을 향했다.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마음과 주말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 아, 그냥 일요일에 시간이 멈춰버리면 어떨까? 아니면 일요일만 48시간이라거나.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게 얼마만인지. 아영은 일요일 아침이 이렇게 긴 줄 처음 알았다. 평일엔 버스시간 맞추려 허둥지둥 바빴지만 오늘은 넉넉하다. 가방에 책은 제대로 들어갔는지 옷은 뭔가 잘못 입지 않았는지. 고3병 때문인지 아영은 요즘 조금 불어난 몸무게가 아무래도 신경 쓰였다. 뭐 진우가 그런 눈썰미가 좀 없으니 다행이지만.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 후부터 오히려 못 만난 것만 같다. 서로 수능 준비로 바쁜 탓도 있었지만 진우네 K고등학교가 일정이 조금 변경되면서 서로의 일과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지난달 진우가 야자를 안가면서부터 좀 만나려나 했더니 이젠 아영의 S고등학교에서 야자를 꼭 나오란다. 정말 대마왕이라도 있어서 방해하고 있는 걸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주말에 학교 가는 것은 빼긴 했지만 그렇다고 만나자고 하기는 서로 조심스럽다. 이젠 30일도 채 남지 않았는걸. 그래도 오늘은 도서관이니까. 아영은 배시시 웃었다.
“어머”
문득 시계를 본 아영은 깜짝 놀랐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된 거지? 너무 여유를 부린 건가. 급하게 덧옷을 걸치고 가방을 메고 신을 신고 후다닥 뛰어나간다.
“다녀오겠습니다!”
문 닫는 소리 쾅. 계단을 급히 내려가다 다시 급히 올라오는 소리 타다닷, 다다다닷. 급하게 다시 문을 여는 소리 쿵. 아영은 신을 벗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폰을 움켜지고 나온다. 다시 문 닫는 소리 쾅. 평화롭던 일요일 아침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진우는 지문을 보다 말고 다시 창 밖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 다시 지문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헛웃음. 도대체 이 지문을 몇 번째 다시 읽는지. 진우는 글자 한자 써보지 못한 애꿎은 펜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켰다. 이래선 일찍 나온 의미가 없잖아. 오기 전에 공부 좀 해 놓으려 했더니. 진우는 다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4층은 풍광이 좋다. 2층이나 3층에 있는 열람실에 비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창가에 놓여진 테이블이라 시끄럽긴 하지만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원래 산이던 곳에 지은 도서관이라 몇몇 나무는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의 수명을 가진 듯 크고 무성했다. 그 중에서도 4층 높이만큼 자란 버드나무가 제일이다. 아니 버드나무가 맞으려나? 바람이 불 때마다 시원하게 흔들리는 나뭇잎은 진우의 머리까지 시원하게 씻어 주었다. 드디어 진우의 시야에 기다리던 것이 보였다. 109개나 되는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는. 진우는 웃으며 다시 펜을 들었다.





펜 움직이는 소리 사각사각. 책장 넘어가는 소리 사르륵. 진우의 시디피가 다음 트랙을 찾아 움직이는 소리 끼륵. 옆 계단으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발소리. 신경 써서 걸음을 죽이는 사람. 그저 무심하게 뚜벅뚜벅 걷는 사람. 4층은 창가에 테이블이 있는 모양이다 보니 확실히 이런저런 소음이 많아. 그래도 답답하지도 않고, 같이 앉아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야 신아영. 공부 안 해?"
"응? 아. 으응"
아영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책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한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분명히 배운 기억은 나는데 말이지. 그때 선생이 줄치라고 말한 것도 기억나는데. 문제가 안풀리니 딴생각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답지를 보자니 진우가 비웃을 것이 분명해. 이 인간은 얄밉게도 우려먹겠지. 틀린 답을 체크하고 넘어가면 두말할 것도 없고 그냥 안 풀고 넘어가도 어떻게든 얄미운 말 찾아낼게 분명해. 정말 말 하나는...
"용암대지"
"응?"
"그거. 7번 문제 말이야. 수직절벽 그거, 주상절리. 용암대지. 한탄강"
"아? 아아. 그렇구나"
"......"
진우는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손에 쥔 펜을 놓고 기지개를 켰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야속하게도 너무 화창하다. 정말 고3에게 치사한 주말이다. 진우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들며 말했다.
"잠깐 쉬어야지. 커피나 마시러 가볼까?"
"그래. 좋아. 헤헷, 고마워"
진우와 아영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속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인지 일어서는 것 만 으로도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장난기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는 진우의 목소리.
"아? 너도 갈려고?"
"응?"
"고맙... 아아. 언제 사준대? 넌 공부해야지. 난 쉬고. 그 회라도 다 풀고 있어"
"...김진우 너!"
웃으며 도망가는 진우의 발소리. 그리고 그런 진우를 쫓아가는 아영의 경쾌한 발소리. 어쨌든 여러모로 4층은 편리하다.





“배부르냐?”
“당연하지”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영을 보며 진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김밥에 떡볶이에 우동이라. 진우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지만 아영처럼 먹어도 먹어도 찌지 않는 경지 까지는 아니다. 이건 감탄을 넘어 경악이다.
“그만큼 먹고도 안찌냐”
“이히히. 신이 내린 은총이라네”
진우는 기지개를 켰다.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행복하다. 배부른 순간엔 이런 고민 저런 생각 다 없이 그저 행복하다.
“오전에 공부는 많이 했어?”
“그, 그럼. 다, 당연하지”
키득키득 대는 진우를 보며 아영은 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우가 웃을 때면 공부 못한다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 아니 사실은 때리는 것을 유도하는 방법일지도. 한대 때리고 나면 힘세다며 한달은 놀려먹기 위해서 말이다. 분명히 자신이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도 항상 성적은 몇 걸음 앞인 진우가 이제는 부럽다기 보단 그저 그러려니 하는 심정이다. 정말 신기한 애야.
“단풍구경이나 갈래?”
“단풍구경?”
“공부 많이 했다며. 쉬는 셈 치고 충혼탑에라도 가자”
아영은 고개를 갸웃 했다. 충혼탑?
“거기 단풍나무도 있었어? 기억 없는데?”
“너 저번 봄에도 거기 친구들이랑 갔었다며”
“응. 벚꽃구경 하러”
진우가 씨익 웃는다.
“역시 우리 아영이 위대하다니까? 벚꽃구경까지 챙기고”
“너어”
화난 듯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아영을 보며 진우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가자. 벚나무 많잖아”
벚나무도 단풍이 드나? 아영은 의아한 얼굴로 진우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다. 금방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바뀐 아영을 보며 진우는 또 킥킥 웃고 만다.





“다리 아파”
“거의 다 왔네. 왜. 업어줘?”
“피이”
충혼탑은 이제 저 계단만 올라가면 이다. 도시가 얼마나 좁은지 완전 20분 생활권이다. 어디든 걸어서 20분이면 목적지 도착이니. 길가에 늘어선 철학관이니 보살집이니 하는 것들을 지나치며 진우는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는 이 근처에 자주 왔었는데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 2학년 이후로는 처음 오는 길이다. 그래도 길 찾는 것엔 문제가 없었다.
“무슨 생각해?”
“응? 아아. 너 버리고 도망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고 있었어”
“뭐어? 너... 죽는다?”
“길은 아냐? 어떻게 쫓아오시게?”
진우는 다시 킥킥 웃었다. 아영은 쀼루퉁해서도 반박하지 못한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 길을 못 찾아서 전화했다는 전과가 있으니 입이 열개라도 아영은 할 말이 없다.
“다 왔네”
“응? ... 와아......”
둥근 공원 한 가운데 하얀 충혼탑이 서있다.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멋대가리 없는 탑 주위를 벚나무가 빼곡히 둘러쌌다. 봄의 벚꽃보다도 더 붉게 물든 벚나무가. 진우와 아영은 천천히 공원 가의 벤치를 향해 걸었다. 밟히는 낙엽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적당하게 마른 낙엽은 부드럽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붉은 카펫마냥 둘을 인도했다. 진우는 아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벚잎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 위, 손을 뻗어 봐도 쉽게 닫지 않는 벚잎, 진우는 까치발을 들어 낑낑대며 단 잎을 아영에게 건넸다. 잎자루는 붉고 잎 끝은 샛노랗다. 깨끗하게 물이 든 잎은 비치는 햇살 따라 색이 변하는 듯 하다.
“예쁘다”
“그래?”
“벚나무가 이렇게 예쁘게... 단풍이 이렇게 예쁜 거 처음 알았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잎 따라 붉어진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10시. 그래도 아직은 가을인데 밤바람은 벌써 쌀쌀하다. 진우는 초록색 파란색으로 빛나는 도서관을 보았다. 정말 시장 취향 이해하기 힘들어. 나라면 차라리 조명 끄고 말지.
“으으으 추워”
진우는 아영을 내려다보곤 피식 웃었다. 당장에 아영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이건 불가항력이라고. 진우도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아영은 더하다. 팔짱을 낀 채로 슬픈 눈을 하고 있다가 눈을 치켜뜨니 그 모습이 더 우습다. 진우는 고개를 돌리고 끅끅거렸다.
“왜 자꾸 웃어!”
“킥, 아 몰라 몰라. 큭”
“진짜!”
집으로 가는 길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사람들이 길가로 늘어선 가로수들은 모두 은행나무. 가로등 불빛 아래선 은행잎도 붉다.
“도서관까지 왔는데 오늘 공부 많이 했냐?”
“응? 다, 당연하지! 많이 했어. 아하하”
“아아 우리 아영이는 공부를 안 해서 큰일이에요”
“...죽을래?”
진우가 씨익 웃는다. 장난기가 다시 발동한다. 여기 길은 알려나?
“아아 춥다. 빨리 가자”
“야야! 기다려! 천천히 가!”
갑자기 빨리 가는 진우를 따라잡으려는데 아영의 시야에 무언가 보인다. 노란, 은행잎. 바람에 흔들려 떨어진 걸까. 아영은 두 손으로 은행잎을 받았다. 노란색. 노란색은 희망. 아영은 미소 지었다. 문득 아영은 고개를 들어 진우를 찾았다. 진우는 그 사이에 저만치 앞에 있다. 생각할 사이도 없이 반사적으로 아영은 다급한 말이 나온다.
“야! 김진우우! 기다려어어!”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는 아영의 뒤로 바람 따라 내려온 은행잎이 바스락거렸다.






-------------------------------



덧1. 도서관 4층 졸랭 좋아.

덧2. 고마워요. 수많은 에피소드의 제공자 들이여!

덧3. 후후후... 4연작으로 써볼까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1 <연재 판타지소설> Next World-(2편) 동료의 힘 [1] Beat.XCX 2006.10.23 1677
350 <연재 판타지소설> Next World-(1편) 첫 발걸음 [2] Beat.XCX 2006.10.23 1632
349 곰인형의 사랑이야기 라딧슈 2006.10.23 1865
348 드래곤공 [1] 썩은수박 2006.10.17 2416
347 운명 ⑵ 작은 마을 에르벤 과 작은 전쟁 - 2 Legato 2006.09.13 1464
346 사관-1 [3] 고구마 2006.04.11 1601
345 운명 ⑵ 작은 마을 에르벤 과 작은 전쟁 Legato 2006.03.22 1564
344 나는 왕이로소이다. [1] 네모Dori 2006.02.22 2595
» 낙엽지는 가을에 네모Dori 2005.11.15 2149
342 운명 (1) 집을 떠나다 - 11~13 - 아나이스 장편 판타지 소설 Anais 2005.11.05 2334
341 [상상연작] 상상연작 [2] 제갈연 2005.10.16 1693
340 운명 (1) 집을 떠나다 - 7~10 - 아나이스 장편 판타지 소설 [5] Anais 2005.09.14 1872
339 이상한 나라의 개사마 [1] 네모Dori 2005.08.12 1933
338 더운 여름에 [5] 네모Dori 2005.08.10 1491
337 무제 [3] 제갈연 2005.08.08 1599
336 운명 (1) 집을 떠나다 - 4~6 - 아나이스 장편 판타지 소설 [3] Anais 2005.08.08 1611
335 운명 (1) 집을 떠나다 - 1~3 - 아나이스 장편 판타지 소설 [1] Anais 2005.08.03 1646
334 꿈과 희망을 주는 환상의 판타지아. [2] 미엘 2005.07.30 1675
333 투명제갈연-(5) [5] 2005.06.26 1859
332 운명 (0) 프롤로그 - 아나이스 장편 판타지 소설 Anais 2005.06.21 1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