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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장편]겨울이야기 6편

2005.05.15 21:42

케테스 조회 수:1870

겨울이야기 6편-광대의 습격

사피르와 엘우드, 그리고 새로 일행에 들어온 타라. 그 셋은 여행을 시작한지 1달 정도가 지났다. 그들은 서로 각자 다른 이유로 인해서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곳은 메인글 초원 한가운데에 유일하게 딱 하나 남은 마을인 몬 힐러 마을이었다.
사피르는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동굴 사건을 기억해내 보았다. 생각해보니 그때 그 광대의 웃음소리가 글로스터 영감탱이와 헤어지기 하루 전날 밤에 왔었던 그 변태의 웃음소리와 비슷했던 것 같았다. 사피르는 곧 그냥 우연이겠지, 하고는 엘우드가 오기를 기다렸다.
엘우드는 현재 포상금을 받으러 간 상태였다. 물론 타라는 여관 아래층에서 주위의 던젼이나 지역의 정보를 팔고 있었다.
동굴을 전부 확인 했으니 그들이 받을 돈은 무려 2500셀린이나 되었다. 물론 한달도 못 버틸 돈이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밀린 여관 방비도 내야하고 외상으로 산 물건도 꽤 되었기에 그것조차도 감지덕지였다.
#쾅!
아주 문이 부셔지다 못해 초전박살이 나는 소리와 함께 엘우드가 멋있게 등장했다.
“사피르! 우리가 산적 잡는데도 공이 컸었다고 포상금을 더 받았어!”
사실 우리가 잡은 거나 다름없는 거였지만, 그래도 경비들한테 개길 수 없어 그렇게 말하며 기뻐하던 엘우드는 손에 들고 있던 보라색 주머니안의 물건들을 침대위에 쏟아 부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납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모형에 금으로 ‘1000’이라고 씌어져 있는 5개의 괴가 굴러 떨어져 나왔다.
“에, 구려. 이왕이면 금화뭉치로 줄 것이지.”
사피르의 배부른 소리에 엘우드가 실소했다.
“허참, 네가 다 들고 다니기라도 할 건가?”
“뭐, 필요하다면.”
엘우드는 사피르의 배부른 소리가 반복되자 입맛을 다지며 괴 뭉치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사피르에게 던진 뒤,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나보고 이걸 뭐 어쩌라고?”
어리둥절해 하는 사피르에게 엘우드는 누워서 눈을 떠보지도 않고 입만 뻥끗했다.
“가서 외상으로 산 물건값이랑 여관비 좀 내고 와. 내가 외상으로 사느라 힘 좀 썼잖냐.”
맞는 말이었다. 그 누구도 미치지 않은 이상은 외상은 절대로 주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도 엘우드가 성직자에다 바티칸에서 순례를 나온 자여서 사람들은 엘우드의 말과 엘우드가 몰래 보여준 그의 성표를-그들은 성표를 알아볼 지식도 없었지만-보고 외상을 내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엘우드, 나는 지금 외상값 갚으면 대충 2000셀린 정도 남거든? 너는 지금 자금상태 어떠냐?”
엘우드는 사피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린 뒤, 힘차게 말했다.
“빵점이야!”
“이 자식….”
사피르와 엘우드가 같이 여행하면서 모든 여행비는 사피르가 다 대었다. 대신 여행하면서 용병일이라든가, 어떤 일들을 해서 받은 이익은 모두 사피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엘우드는 항상 사피르에게 자신의 자금 상태는 제로라고 밝혔다.
저녁이 되자 타라가 사피르와 엘우드가 묵는, 남자 둘뿐인 징글맞은 방으로 찾아왔다.
“어이, 당신들.”
사피르는 자신보다도 나이가 어려보이는 타라가 반말하는 것이 늘 마음에 안 들었던지 거세게 반항했다.
“싫어!”
“뭐가.”
비록 난데없는 반항이었지만 타라의 이마에 힘줄을 돋우는 데는 한몫했다.
“사피르, 저놈 또 저래. 아참, 말해줄게 있는데.”
타라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사피르와 엘우드를 차례로 본 뒤,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홀드아이로 번 돈으로 대충 2달은 버틸 수 있을 거야. 일단 이 돈은 사피르한테 맡길게. 헌데 내가 어제 대충 우리 짐을 확인해 봤거든?”
엘우드가 흠칫 놀라며 타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남세스럽게 남자 둘만 있는 방에 여자가 들어오다니! 그것도 몰래!”
사피르도 흠칫 놀라며 타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 맞아! 남세스럽다!”
“아, 시끄럽고, 우린 지금 여행의 기초도 모르는 것 같아. 우리가 목적지를 정해놓고 여행하는 것도 아니잖아?”
타라의 말에 사피르가 팔을 번쩍 들며 반발했다.
“왜 없어, 왜! 서로 목적지를 말 안 해줘서 일뿐이잖아!”
타라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사피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 있다면 어디 너부터 한번 말해보시지?”
“으흠.”
바로 고개를 돌리는 사피르였다.
“어쨌든 일단 내일 장부터 보자. 그다음에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고.”
타라는 엘우드와 사피르에게 한번씩 시선을 주었다.
“누구 불만 있는 사람 있어?”
사피르와 엘우드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좋아, 그럼 나는 가서 대충 계산할 테니, 내일까지 외상값이랑 여관비 다 지불하고 로비 앞으로 모이도록! 알겠어?”
사피르와 엘우드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럼 내일 보자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타라는 방에서 나갔다.
“자, 그럼 난 천천히 외상값이나 갚으러 가보실까?”
사피르는 엘우드를 남겨 놓은 채, 느릿느릿 방을 빠져 나왔다.
사피르는 상금과 자기 재산, 그리고 타라가 벌어다 준 돈으로 외상을 갚으러 가는 길에 천천히 계산을 해보았다. 옷가지와 무기들의 외상, 숙박비, 식비를 다 빼보니 무려 7000셀린이나 남는 것이었다.
“아싸! 그럼 그 돈으로 뭘 하지? 아, 맞다! 타라가 내일 장본다고 했었지.”
사피르는 기분이 아주 좋은 듯,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사피르의 시선이 정확하게 딱 한 곳에 꽂히게 되었다.
“저…저것은!”

“아, 사피르는 언제 오는 거야?”
엘우드는 너무나도 심심한 나머지 혼자서 침대에서 뒹굴며 놀다가 곧 지쳐서는 오늘따라 늦게 오는 사피르를 찾게 되었다.
“한번 찾으러 나갔다 와볼까?”
그때, 문이 쾅, 하고 세게 열리며 사피르가 아주 기분 좋은 목소리로 하여금 엘우드의 전신에 닭살을 돋우게 하였다.
“엘우드, 나의 절친한 벗이여! 평생 동안 여행길에 오를 나의 동무여! 내 오늘 하늘과도 바꿀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을 얻었으니…읍!”
엘우드는 더 듣기 싫었는지 사피르의 입을 막고는 중얼거렸다.
“어이, 좀 평범하게 말해. 낯간지러워 죽겠다.”
사피르는 잠시 마음을 안정시킨 뒤, 엘우드에게 갑자기 무언가를 디밀었다.
“짜잔! 내가 오늘 보물을 얻었어! 단돈 6999셀린! 7000셀린도 안되지 뭐야?”
엘우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튜너도 떨어져 나간 고물 우쿨렐레였다.
“사피르, 그게 어디가 보물이라는 거야? 너 타라의 챠크람에 사지가 잘려나가고 싶은 거야? 그리고 6999셀린이나 7000셀린이나 다른 게 뭐야? 차라리 1셀린 더 주지 그랬어? 그리고 무슨 돈이 있어서 그렇게나 비싼 것을 산거야? 돌았어? 그 돈이면 우리가 2달, 아니, 3달은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재산이라고!”
넋이 나간 얼굴로 사피르를 나무라는 엘우드를 사피르는 건방진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쯧쯧. 엘우드, 그래서 네가 안 된다는 거야. 이건 폴비스 컴파니에서 무려 700년 전에 만들어진, 세상에 5개뿐인 진귀한 보물이라고. 이건 정말로 하늘과도 바꿀 수가 없는 보물중의 보물이지. 그깟 돈으로는 값을 매길 수가 없다고.”
엘우드는 포기했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침대위로 엎어졌다.
“난 몰라.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나 몰라라, 하는 엘우드의 태도에 사피르는 심통이 났는지, 엘우드에게 아주 귀여운 목소리로 아양을 떨었다.
“어머, 무슨 소리야? 이건 너와 나, 우리가 합심해서 산거라구. 설마 이제 와서 날 버리는 거야?”
순간 엘우드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이자식이 진짜?! 네가 정녕 나의 해머에 의해서 생을 마감코자 하는 것이더냐!”
그렇게 그들은 지쳐서 잠들 때까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 작은 방에서 펼쳤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내일 여관주인에게 방의 수리비를 내는 것과 타라에게 7000셀린의 행방에 대해 추궁을 당하는 일만이 남게 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타라와 약속한 장보는 날이 왔다. 다행히도 여관수리비는 남은 돈으로 그럭저럭 잘 넘어갈 수 있었다. 허나 현재 사피르는 앞날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우어어, 타라한테 밟힐 것도 걱정인데…이 나의 보물마저 줄이 끊기다니….”
그랬다. 타라한테 얻어맞을 것을 각오하고 산 폴비스 컴파니의 올드시리즈를 밤새도록 치다가 줄마저 끊어버린 사피르였다.
“뭐야, 까짓 거 줄 갈아 끼우면 되잖아?”
엘우드의 빈정거림에 사피르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이런 무식이 하늘을 찌르고 우주를 건너 미지의 세계로 출장 갈 놈아, 이 악기의 줄은 다른 줄은 안 맞는다고. 반드시 폴비스 컴파니에서 만든 줄이어야만 소리가 난다고.”
“그럼 폴비스 컴파니인지 뭔지에 가서 사면되잖아?”
사피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런 뇌가 페어리만한 녀석아, 폴비스 컴파니는 백여 년 전 망했다고. 그 줄을 어디서 구하라는 말이야.”
서서히 엘우드의 머리에 힘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근데 사피르, 그보다 타라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난 모르는 일이고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알았지?”
엘우드의 이기적인 말에 사피르는 내심 타라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만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지내오면서 충분히 타라의 성격을 잘 파악하게 되었다.
타라는 돈을 그렇게 욕심내거나 아끼지 않는다. 허나 아무렇게나 쓰지도 않는다. 필요한데만큼은 아주 통 크게 쓰는 타라지만, 남의 취미생활에 돈을 대 줄 만큼이나 부자이지도 않고 통이 크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깜박 잊고 있었던 사피르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현재 사피르의 목숨은 헤일 앞의 양초였다.
“엘우드, 우리가 타라하고 어디서 만나기로 했지?”
“로비 앞.”
덤덤하게 말하던 엘우드는 갑자기 짐을 싸들고 창문을 여는 사피르를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사피르의 행동을 저지했다.
“잠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사피르는 진지한 눈빛으로 엘우드의 짙은 회색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일단 살고 봐야지.”
“…….”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엘우드는 사피르를 끌고 타라와 만나기로 약속한 로비로 향했다.
타라는 벌써 나와서 지도를 살피고 있었다. 워낙 눈이 안 좋은 타라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안경을 쓰고 입에는 담배를 문 채 지도 이곳저곳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은 영락없는 건달이었다.
“여어, 건달씨.”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엘우드의 자유분방하고 센스 있고 간단한 신세대 아침인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타라는 인상을 쓰며 한쪽 눈을 슬쩍 돌려서 노려보았다.
“자, 여기 이 사피르가 할 말이 있대.”
사피르는 엉겁결에 앞에 내세워졌다.
“어엇?”
타라는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눈빛으로 사피르를 바라보며 우물쭈물해 하는 사피르의 면상에 담배를 휙, 던져서 맞추었다.
“앗 뜨거!”
“뭐, 할 말이라는 게 혹시 뭐 악기 같은 거 사다가 돈 날렸다는 거냐?”
“엇?”
정확하게 맞춘 타라였고, 예상치 못한 일에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는 사피르였다.
“하, 내가 옆방이라서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나 보군.”
“…….”
“뭐, 괜찮아. 어차피 그럴 줄 알고 돈을 다 내주지 않았으니까.”
순간 타라와 동행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엘우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금으로는 여행물품은 구할 수는 있어도 다른 마을가서 무언가 일이라도 해야겠는 걸?”
사피르일행은 타라가 남겨 놓은 비상금을 가지고 일단 시장에 물건들을 사러 갔다. 현재 일행이 가진 돈은 고작 2000셀린이었고, 다행히도 필요한 것들은 모두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가격을 깎느라 고생 좀 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구한 것들의 목록은 이랬다. 건량 30인분과 수통 세 개, 망토 두벌-사피르는 이미 망토를 지니고 있었다―옆으로 메는 단단한 거대 가죽 색(sack), 타라가 쓸 가벼운 챠크람 두 개, 은 탄알과 구리 탄알들, 화약 두 주머니, 엘우드가 쓸 성수와 은괴 세 덩어리, 축복이 걸린 십자가 목걸이, 사피르가 쓸 류트 줄, 만돌린 줄, 우쿨렐레 줄과 반조 줄 각각 세 세트씩, 그리고 마지막으로 둥글고 검은 폭탄 5개.
건량 30인분은 상당히 적은 양이었지만 돈이 모자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타라는 포도주도 몇 병 사려고 했으나, 돈이 없어 결국 못 사게 되었다.
“젠장. 사피르, 너 앞으로 허락도 없이 돈 썼다간 네 놈의 보물인가 뭔가를 박살내버릴 거야.”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피르였다. 다들 각자 필요한 것을 샀지만 사피르는 역시나 악기에 쓸 줄들 외에는 산 게 없었다.
타라는 대충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사피르와 엘우드를 쭈욱, 훑어 본 뒤 마을 입구로 향했다.
“좋아, 지금 떠나면 아마도 저녁쯤에는 안전지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안전지대?”
사피르는 처음 들어보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너 여태 안전지대도 모르고 여행해 온 거야? 꽤나 고생했겠구먼.”
엘우드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 나도 모르는데?”
“…….”
타라는 앞날의 위험성을 깨닫고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안전지대에 대해서 설명했다.
“안전지대란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샘가를 말하는데, 인공적으로 만든 샘에 캠프를 할 수 있는 터가 딱 잡혀져 있는 곳이지. 물도 있고 평지니까 대부분 안전지대에서 캠프를 하곤 해. 다른 곳들은 풀이 너무 많이 자라 있거나 물이 없어서 고생하거든.”
가만히 듣고 있던 사피르가 물었다.
“그런데 안전지대에도 마물이나 짐승들이 접근해?”
“응. 당연하지. 그저 캠프하기에 딱 알맞을 뿐이야. 누군가는 보초를 서야 할 걸? 자칫 잘못 하다가는 다 죽기 마련이야.”
“쳇, 뭐가 안전지대야?”
엘우드가 빈정거리자 타라가 살짝,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안전지대가 싫다면 마을에서 자도 돼. 물론 뛰는 걸로 모자라서 말보다 3배는 빨리 달려야 할 걸? 메인글 초원은 상당히 넓거든. 아마 보통 속도로 걸어서는 2주는 걸려야 초원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야.”
어느새 일행은 입구에 다다르게 되었고, 천천히 마을 밖으로 발길을 향했다. 입구에 서서 보초를 서던 경비들은 오가는 사람들을 꼼꼼히 신원확인을 하고 있었다. 사피르일행도 예외는 아닌지라 신원확인을 받게 되었다.
“자, 다음 일행. 신분증을 내시오.”
엘우드가 나서서 성표를 보였다. 그리고 경비에게 엘우드가 뭐라고 속삭인 뒤, 우리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드디어 마을 밖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우선 사피르가 일행들을 잠시 멈추게 하고는 말했다.
“자, 이제 우리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정해보자. 일단은 우리의 각자의 목표나 목적지를 말해보자고.”
엘우드가 나서서 말했다.
“난 그냥 젊은 시절을 만끽하다가 터 좋은 곳에다가 신전이나 하나 세울 생각이야. 게다가 교황청에서도 미래를 위해 여러 곳에다가 신전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고 있거든.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 전쟁’이후로는 그렇다할만한 종교도 없었잖아? 그나마 우리들 교가 신에게 구원을 받아서….”
“아, 됐어. 그럼 타라, 너는?”
사피르는 지루하게 이어질 엘우드의 말을 끊고 타라에게 질문했다. 타라는 그들과 만난지도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그들의 일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마도 그녀가 그나마 가장 생활력이 있어서가 아닐까하는 의문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꿈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이 있었어.”
“에, 유치하긴.”
#푹.
사피르의 가벼운 입이 조용해진 가운데, 타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꿈은 아니지만 목표가 하나 생겼어.”
“뭔데?”
엘우드가 묻자, 타라는 사피르와 엘우드를 번갈아보더니 다시 입을 열어 이어나갔다.
“내가 옛날에 어떤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어. 그는 나와 계약을 했었지. 계약 당시 그는 3년 후에는 죽을 운명이었지만…지금 내가 아는 이가 말해주길, 그가 계약을 깨고 도망친 후, 그 내가 옛날에 일하던 곳의 놈들과 싸우고 있다고 하더군. 솔직히 놀랐어, 인간이 그렇게 강해질 줄은.”
순간 사피르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타라를 지그시 보았다.
“놀라웠다고? 그게 뭐가 그리 놀라워? 인간이 신과 대등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세상에 뭐가 그리 놀라워?”
타라는 미간을 짚으며 약간 비웃는 듯한 말투로 사피르의 말을 부정했다.
“웃기지마, 신이 지금 이 세상에 관여치 않아서 그러나본데, 그자와 대등하게 될 존재는 없어. 그는 본디부터 태어난 존재가 아닌 원래부터 존재한 자야. 게다가 모든 것을 종이 찢듯이 다룰 수도 있는 자고.”
“아니, 타라야. 너의 말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빗겨나갔어. 인간이 신보다 힘이 더 세진다고 하더라도 신을 뛰어넘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모두들 엘우드의 말에 주목하게 되었고, 엘우드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바로 수명의 차이야. 신은 죽지 않되, 인간은 오래 살아봤자 백년이 안 넘어. 가끔 운이 좋아서 한 세기를 산 사람도 있지만 결국 영원히 살지는 않았어. 그것이 인간과 신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오를 수 없는 장애물이야.”
엘우드가 말을 마치자, 모두들 엘우드를 놀라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엘우드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당연히 교리에서 배웠지.”
사피르와 타라는 교회라는 종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즈음,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어느새 절벽들이 곳곳에 있는 거대한 계곡까지 오게 되었다.
“우와, 정말 거대하다.”
타라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경치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사피르가 지도를 훑어보며 말했다.
“이봐, 이 계곡만 지나면 바로 숲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원숭이 숲’이라는 군.”
#탁탁탁, 착!
이상한 소리. 하지만 일행들은 그 누구도 못 들었는지 그저 멍하니 앞길만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엘우드가 타라와 사피르에게 속삭였다.
“다들 알고 있지?”
타라가 앞에 시선을 둔 채 입만 벙끗했다.
“절대 뒤를 보지 마. 지금 대충 20보정도 밖에 있어.”
사피르는 언제든 불덩어리를 날릴 준비를 한 채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다.
#탁, 탁, 탁, 탁, 탁!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발소리가 3번만 더 들리면 바로 공격이야. 알았지?”
#탁, 탁!
“으음?!”
“쉿, 곧 오겠지.”
갑자기 멈춰서 놀란 타라에게 엘우드가 속삭였다. 그리고 뒤에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갈 건데? 너희가 와. 내가 가면 공격할거잖아?”
일행은 전부 돌아서게 되었다. 방금 그 목소리는 몬 힐러 마을에서 죽였던 광대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안녕? 내 이름은 페스터. 너희들 지금 신에 대해서 얘기하는 듯했는데….”
“…….”
“…….”
“넌 뭐야….” 타라 외에는 전부 입을 꼭 다물고 있게 되었고, 그 광대는 누구냐는 타라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말만 하고 있었다.
“틀렸어, 차이점은 힘도 수명도 아니야. 신과는 다른 존재라는데 있어. 수명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신과 대등해진 인간이 있었다고? 하, 웃기셔. 내가 영원이란 시간에 영겁의 숫자를 곱한 만큼을 살아왔지만 난 신과 전혀 동등하지 않아. 나의 힘 또한 뭣하면 이 대륙의 끄트머리정도는 가볍게 날릴 정도라고. 아니, 그건 좀 너무 거짓말 같고 마을 하나정도? 좀 오래 걸릴 테지만 말이야. 하지만 신과는 대등하게 못돼. 솔직히 신은 힘이 없어. 하지만 우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지. 뭐, 인간 중에서도 우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놈이 있겠지. 하지만 결국 다 소용없어. 신에게 까불었다간 신의 ‘꺼져’한마디에도 다 전멸할 우리라고!”
타라는 열심히 떠들어 대는 광대를 보며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라니? 그럼 너도 인간이란 말이야?”
“으음…. 아마 그럴지도?”
“확실치 않은 것으로 쓸데없이 유언비어나 퍼트리지 마라.”
갑자기 타라의 인상이 험해졌다.
“타라의 말이 맞네, 자네는 인간이 아니야. 영원이란 시간에 영겁의 숫자를 곱한 세월을 지내온 그대가 어찌 인간이란 말인가?”
“저기, 엘우드. 말투가 좀 그렇다.”
엘우드는 사피르와 타라의 앞에 나서며 페스터에게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아직도 의문이네. 신은 존재하는가? 어째서 그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지?”
페스터는 엘우드의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자신이 올라있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읏차, 솔직히 나도 그건 잘 몰라. 단지 그가 현재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에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아마도 또 다른 삶을 만들러 갔을지도 모르지.”
“또 다른 삶이라면….”
엘우드와 페스터는 계속해서 말을 주고받고 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의견을 묻고 답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엘우드가 페스터의 시선을 빼앗은 동안에 타라는 얼른 사피르에게 다가갔다.
“지금 엘우드가 페스터란 놈을 잡아 두고 있으니, 우리는 빨리 몬 힐러 마을 쪽으로 도망치자. 엘우드는 내가 알아서 데리고 갈 테니 너는 먼저 마을에 가서 구조 좀 요청해. 네 말을 안 믿거든 시청에 가서 저번에 동굴에서 만났던 그 경비병들에게 가. 그들이라면 믿어줄 테니.”
듣기만 하던 사피르의 고개가 잠시 위아래로 살짝 흔들렸다. 그것은 타라의 말에 수긍한다는 뜻이었다. 그때, 엘우드와 열심히 토론을 하던 페스터가 크게 외쳤다.


오른발, 왼발, 차례로 걸어라
땅 속 깊은 곳의 나무야 자라라

깊은 산, 넓은 강, 차례로 다녀라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낙타야 달려라

괜찮다 시간아 나는 여기 머물련다
나와 함께하는 이들 다 붙잡아 두어라


마치 노래인 마냥 신나게 음도 넣어서 부르던 페스터의 말이 끝나자, 땅에서 갑자기 삼각형의 긴 탑이 솟아나더니 하얗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젠장! 마법을 쓰다니!”
타라가 재빨리 페스터에게 달려들며 챠크람을 휘둘렀다. 허나, 저번의 동굴에서처럼 페스터는 그냥 맞아주지는 않았다. 페스터는 갑자기 돌로 변하더니 타라의 뒤에 나타났고, 타라는 쓸데없이 돌에다 챠크람의 날만 상하게 만들었다.
“와우, 저번에 맞아보니 그거 정말 아프더구먼.”
“망할, 대체 무슨 마법이냐.”
페스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사피르의 말이 들려왔다.
“야, 타라! 이놈이 네 계획을 다 들은 모양이다. 주위를 둘러봐.”
타라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에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아주 절실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를…가두었군.”
주위는 별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 듯 했으나, 실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몬 힐러 마을부터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보이지 않았다. 페스터가 공간을 엮어서 어디로 가든지 마을 밖으로 나가게 해놓아서였다.
“젠장…….”
타라의 욕지기가 섞여 나온 말이 즐거운지 페스터는 연신 깔깔대었다.
“깔깔, 나가고 싶니? 그럼 저 빛나는 탑을 부수렴. 공간이 다시 되돌아올 거야.”
뒤에서 묵묵히 상황판단을 하던 엘우드가 그 말에 엄청난 속도로 탑을 향해 돌진했다.
“어딜?”


아름다운 뒷동산에 놀러온 아가씨
나의 모습을 보고 놀라 예의 갖추는 아가씨


또다시 시작된 페스터의 주문 아닌 주문에 사피르가 얼른 불덩어리를 페스터에게 집어던졌다. 하지만 페스터는 다리하나로 불덩어리들을 모두 쳐냈고, 곧 이어서 날아온 타라의 챠크람도 잽싸게 피해냈다.
그리고 엘우드의 해머가 탑을 부수려는 순간, 그는 주문의 끝을 끝끝내 말해버렸다.


그녀의 이름은 봄, 따스한 정을 가진 아가씨


#쿠앙!
갑자기 엘우드의 해머가 튕겨져 나오게 되었다.
“으헉, 뭐야?”
쓰러졌다가 곧바로 다시 일어난 엘우드는 자신이 어째서 튕겼는지에 대해서 당황해 하며 그 원인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그의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엘우드의 앞에는 우람한 근육질에 다부진 외모를 가진, 허나 어울리지도 않는 핑크색 투피스를 입고 짧은 스마트컷에 검은 피부를 가진 자가 오른손에는 피로 추정되는 것들이 드문드문 묻어있는 커다란 네잎클로버모양의 철구가 달린 무기를 들고 엘우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페스터가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놀랐냐?”
“…웬 아저씨야?”
#쾅!
엘우드는 저만치 날아가서 절벽에 처박혀버렸다. 그리고 엘우드가 아저씨라 칭한 자는 어느새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있었다.
“어허, 아저씨라니. 말조심해, 이래봬도 얘가 봄의 여정령이라고.”
엘우드는 다시 일어나며 봄의 여정령을 보았다. 그는 몸 구석구석이 쑤시는 고통을 참으며 다시 해머를 꽉 쥐었다.
“젠장, 여정령이 왜 저래?”
#슈욱, 챙!
이번에는 정확하게 막아낸 엘우드였다. 허나 봄의 정령의 무기도 무기지만 힘도 엘우드보다 센지라 엘우드는 조금씩 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윽!”
페스터는 남은 타라와 사피르를 경계하며 엘우드를 위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런 정령이 흔치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솔직히는 나도 그놈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지.”
그의 말을 그다지 귀담아 듣고 있지 않던 타라가 슬그머니 총을 빼들었다. 이번에는 소총이 아닌 긴 총구를 가진 장총이었다.
타라는 총구로 페스터의 머리를 겨냥하고는 방아쇠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사피르, 엘우드를 도와줘!”
#투캉, 투캉!
빠르게 지나가는 총알들을 페스터는 이리저리 잘도 피해내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타라에게 파고 들어오면서 주문을 외쳤다.


그대의 이름은 누가 지어준 것인가
하늘이 내린 것인가, 신이 준 것인가

그대의 이름은 이롭다 할 수 있는가
그대의 이름으로 인해 자멸치 않겠는가


#파앙!
“크윽!”
갑자기 타라는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누군지 타라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타라야, 타라야. 너의 더러운 삶을 끝내야 할 때가 왔다.’
‘타라야, 타라야. 너의 과거는 어디로 간 것이냐. 너의 모든 힘은 전부 어디로 갔단 말이냐.’
‘타라야.’
‘타라야.’
‘타라야.’
너무나도 많은 목소리, 시끄럽지는 않지만 혼란을 주는 목소리. 타라는 그 목소리 하나하나를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아픔을, 그리고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사피르!”
타라가 참다못해서 엘우드와 함께 힘을 합쳐 정령을 상대하고 있던 사피르를 불렀다.
“도와줘!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 저…저 광대자식 좀 어떻게 해봐!”
“거참,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것도 많네. 알았어!”
사피르는 얼른 가방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류트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얼른 주문을 외치면서 페스터에게 달려갔다.


어젯밤 성이 무너지고 산이 쓸렸네
누구였을까 누구의 짓이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게 나였네


페스터는 순식간에 자신에게 다가온 사피르를 막으려 했다. 허나….
“죽어라, 광대!”
“이…이게 뭐야?”
사피르의 주문이 끝나자 사피르가 들고 있던 류트가 거대해져 있었다. 그 크기는 마치 계곡의 절벽의 절반 정도나 되는 크기로 보였다.
“아악!”
그리고 그 거대한 류트는 페스터를 아주 강하게 내리쳤다. 순간, 페스터는 엄청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
“…….”
“아하핫.”
페스터와 타라는 말없이 조용히 서있게 되었다. 물론 페스터는 멀쩡했다. 그 거대한 류트는 사라지긴 했지만. 타라에게 걸려있던 저주도 어느새 인가 풀려있었다.
어이없어 하는 둘보고 들으라는 듯이 사피르는 싱긋, 웃어 보이며 한마디 했다.
“속았지?”
페스터는 아직도 머리에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쓴 거지?
“자, 먹어라!”
#퍽!
사피르는 페스터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지만 페스터는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었던 듯 했다. 그는 사피르가 휘두르는 류트에 세게 한방 먹혔다.
페스터와 함께 정신을 놓고 있던 타라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외쳤다.
“야, 네가 그러고도 마법사냐! 공격마법을 써야지! 그 이상한 속임수는 왜 써!”
“오호호호호호호호호호!”
타라가 사피르를 나무라던 중, 갑자기 낯간지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페스터가 벌떡 일어나 자신이 들고 있던 막대기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이런 비겁한 자식! 그런 속임수를 쓰다니! 이제 너 같은 놈 따위 상관치 않겠어!”
“헹. 열 좀 받나보네?”
페스터는 엘우드와 전투를 벌이고 있던 정령을 향해 말했다.
“포르메로스, 자폭이다!”
“뭣?!”
“뭔 폭?!”
“…….”
페스터의 말을 들은 정령은 무기를 거두고는 갑자기 둥그런 빛으로 변해서는 공중에 떠올랐다.
“잘 가, 그리고 기억해둬. 너의 앞길엔 항상 내가 있다.”
그 말과 함께 페스터는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콰앙!
“음?”
1달 새에 동굴이야기 따위는 과거의 일로 여겨지게 된 몬 힐러 마을에서 일하던 여러 농부들은 보리씨를 뿌리다말고는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놀라 마을 밖의 거대하게 솟은 계곡 쪽을 쳐다보게 되었다.
계곡 쪽의 저 멀리에서는 회색의 연기가 감돌고 있었고, 사람들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그 굉음을 들은 시청에서는 의아해하며 조사를 위해 경비병들을 계곡 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슈우우우우….
봄의 정령에 의한 폭발로 인해 사피르일행은 모두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두 잘 피신한 덕분에 그 누구도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콜록, 콜록!”
흙먼지에 의해서 누구하나 먼저랄 것도 없이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물론 흙먼지를 피해서 나오면 되겠지만, 그들이 서 있던 곳은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이었고,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신과 대면이 가능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물론 그 누구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들 괜찮나?”
기침소리가 연신 들려오는 그 흙먼지의 안개 속에서 엘우드만이 그나마 나은 목소리로 모두에게 상태를 물어보았다.
“아, 괜찮아. 콜록!”
흙먼지가 모두 바람에 쓸려갔을 때 쯤, 모두들 일행과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각각 짐을 추스르고는 전부 물을 들이켜서 흙먼지로 인해 건조해진 목을 축였다.
“자, 이제 어떡할까? 마을로 돌아갈래? 아니면 계속 가던 길을 갈래?”
솔직히 그들은 시간을 약간 낭비한 것을 빼면 그다지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본 것은 없었다. 있다면 옷이 약간 더러워진 정도랄까?
일행은 엘우드의 질문에 그냥 가던 길을 가기로 했고, 그들은 천천히 원숭이 숲을 향해서 걸음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