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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단편]마지막 인사

2005.03.02 02:14

케테스 조회 수:2472

마지막 인사 [지은이: 케테스]


내 이름은 올란드. 난 지금 어떤 귀족 집에 팔려가는 중이다. 나의 존경스러운 부모님들께서 주머니가 궁하시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파신 거다.
뭐, 어차피 집에 데리고 있어봤자 굶기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을 테니, 차라리 날 부잣집에라도 팔아준 게 너무 고맙다.
나는 마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음, 이제야 영지에 도착했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잔뜩 주름을 잡고 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준 노인네는 내가 팔린 귀족 집의 집안 대대로 혈통을 따라 영지에 지박해 있는 집사였다. 그는 마차가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한마디 한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넓게 펼쳐진 초원이었다. 근데 이게 다 이 영지의 영주님 거란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이 어떤 집안이냐 하면은, 지금 대륙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론 델 집안이었다. 론 델 집안은 사실 그냥 가난한 귀족이었는데 론 델 27대손인 알베르트 론 델 장군이 사병으로 지내던 시절에 전장에 직접 출전하신 황제폐하를 화살 소나기로부터 지켜내 그 공적을 인정받아 장군이 되었고, 그 길로 계속 뚫어서 지금의 대륙 최고의 사교계를 주름잡는 거장이 된 것이다. 물론 대륙 최고의 갑부 귀족 집안이자 황제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집안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마차는 성에 도착했다. 나는 성에 도착하자마자 집사에게 성 내부를 안내받았고, 내가 할일과 내방, 그리고 한달에 500골드씩 받는다고 가르쳐주고는 첫날이니 오늘만큼은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일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내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내방에는 옷장하나와 침대하나뿐이었다. 게다가 방이 그런대로 커서 내가 10바퀴는 구르고도 남을 공간덕분에 방의 분위기는 아주 허전했다. 그리고 내 배도 마차를 오랜 시간동안타고 오느라 허전해져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곧 집사의 부름을 받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아주 검소하게 빵과 따듯한 우유가 다였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저녁을 먹은 뒤, 내방으로 돌아왔다. 처음인데다 성이 하도 커서 길을 헤맸지만 다행히도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돌아와서 곧장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아 창가에 붉은 노을빛이 새며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노을에 의해 만들어진 붉은 그림자를 보며 아까 집사로부터 들은 내 할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할일은 오직 하나, 이 집의 두 명의 아들 중 첫째인 셰이프 론 델 자작님을 모시는 일이었다. 즉, 하루 종일 그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일까 하며 그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항상 여느 때와도 같이 아침이 밝았다.
나는 세수를 한 뒤, 아침을 먹고 곧장 론 델 자작님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 물론 성에서는 뛰면 안 되기 때문에 달려갔다기보다는 빠르게 걸었다는 말이 맞을 거다.
내가 그의 방문 앞에서 대기한 지 십 여 분이 지나자 문이 열리고 내 또래처럼 보이는 한 소년이 나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나는 그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그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새로 온 내 직속 하인이니?”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예.”
그는 내 대답을 듣고는 환한 미소가 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 종일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뒤처리를 하거나 그의 검술 연습상대가 되어주었다. 다행히도 그는 소설 속에서 나오는 그런 염치없고 못돼 쳐 먹은 돼지 같은 양반은 아니어서 나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세월도 빠르게 흘러 어느새 3년이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자작의 시중을 들고 있었으며, 집사와는 어느새 부자사이가 되어 있었다. 자작은 그동안 빠르게 성장해서 지금 이 성안에서는 그보다 외모가 수려하거나 키가 큰 이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검술도 웬만큼 할 줄 알았다.
나는 그동안 자작님의 검술 상대가 되어드렸었고, 잘 피하기 위해서 민첩함을 훈련하던 어느 날, 아버지나 다름없는 집사가 나에게 독침과 비수를 던지는 법을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과나무의 사과의 꼭지도 맞출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대충 감을 잡아 운을 믿고 던져 맞추는 것이었다. 연습하면 연습할수록 운은 높아져 갔다.
오늘 나는 평소에 하던 자작님의 시중을 드는 것을 잠시 하루 쉬고 오늘 새로 온 신입 하인들을 보러갔다. 그들은 총 5명이었는데 모두들 곧 나를 형이라 부르게 되었고, 나는 그들을 따듯하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성의 안전을 위해서 론 델 집안이 큰돈을 주고 데려온 아이들이란다. 보니 모두들 무언가 하나씩 할 줄 아는 애들이었다. 물론 전투에 관한 것만.
론 델 집안이 큰돈을 들여가면서 까지 그들을 사온 이유는, 1년 전 내친, 셰이프 론 델의 동생, 즉 둘째가 복수심으로 불타며 지금 론 델 집안을 없애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셰이프 자작님이 집안을 잇는 것에 불만을 삼고, 개인적으로 사병을 구해 군대를 모집했다.
그 소식은 어느새 론 델 집안의 정보망을 통해 자작님의 귀로 들어왔고, 자작님은 5명의 고수를 사와 자신의 개인 군대에게 그들의 기술을 가르치게 한 것이다.
그들의 기술은 각각 사격, 폭탄 제조법과 실전사용법, 거대한 곤봉을 휘두르는 봉술, 아주 작은 단도로 급소만을 찌르는 기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타르를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그들은 각각 방어선에 서게 되었고, 언젠가 올지도 모를 적을 위해 단단히 대비하게 해놓았다.
나는 그들에게 하루일과와 다른 것들을 가르쳐 준 후 자작님의 방으로 돌아왔다. 자작님은 방에서 따듯한 와인을 마시며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 언제나와 같이 창가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발자국소리를 내며 한발자국 방안에 들어섰고, 자작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창밖을 보는 그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에 새로 온 애들은 괜찮아?”
나는 선선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네, 그런대로 착하고, 또 실력들도 괜찮습니다.”
“그래.”
그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계속해서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는 말했다.
“알지, 오늘 그 영감 제삿날이라는 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자작님이 영감이라 칭한 사람은 바로 내 아비와도 다름없는 그 집사였다. 자작님 역시 그를 총애하셨기에 아마도 그를 추억하고 계셨나보다.
“내가 요양 보내준다고, 이제는 가서 좀 쉬라고 했는데도 끝까지 말 안 듣더니 결국 죽었지.”
그의 얼굴에 슬픈 그림자가 내렸다. 그는 와인 잔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 수고했어, 이제 가서 쉬어도 좋아.”
나는 그에게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는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았고, 나는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이 집에 있었던 3년이란 시간동안 가장 충실하고 잘했던 것은 인사였던 것 같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인사를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오죽하면 자작님의 아버님이 나에게 아침마다 제일 먼저 자신에게 와서 인사하라고 했겠는가? 게다가 자작님의 생일날, 폐하가 오시는데 그때마다 나보고 나가서 정중히 마중하라했다.
어느 날인가 자작님이 내게 한 말에 의하자면, 나의 인사가 자작님이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 같다고 하셨다. 왠지 모르게도 내가 인사할 때, 나의 제스처나 말의 어감이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나의 별명은 ‘인사의 대가’로 불렸다.
난 근 3년간 그렇게 불리며 꽤 행복하게 지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도 불만은 없었고, 오히려 이곳에 오게 해준 나의 빌어먹을 부모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들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난 이런 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이런 생활도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론 델 집안에서 높은 인사가 나오지 않아 집안의 추세가 낮아지고, 국왕이 바뀌면서 집안이 점점 더 약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때에 자작님을 철전지원수로 생각하는 둘째 도련님이 틈틈이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다가, 그는 다른 높은 분들에게 온갖 아양을 떨어 귀여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나 그 누구라도 자작님을 공격한다면 나는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충성심이 소설이나 전설에서나 나오는 심복들에게서나 나오는 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내가 막상 그 심복이란 것이 되어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충성심과 함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작님을 보호해야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다른 평민이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내가 적이 올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나는 오히려 적이 쳐들어오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내 충성심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충성심이 진심이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 탐구심을 자아내 적이 올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도 같다. 나는 항상 바란다. 남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평생소원은 자작님을 죽을 때까지 모시는 거다. 그리고 자작님을 편하게 해드린다는 나만의 인사도 자작님께만 하는 것이다.
내가 평생 동안에 가장 뜻 깊고 보람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작님과 론 델 집안을 섬기게 된 일이다.
나는 이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내가 이곳에 팔려와 별 잡생각을 다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집안의 심복이 된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그리고 나는 그 누가 되었더라도 자작님을 불편하게 해드리거나 공격한다면 나의 목숨을 바쳐 그를 쳐부술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평생, 아니, 죽어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렇게 내가 충성을 다하던 어느 날, 결국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론 델 집안에 둘째 도련님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나라에 반란이 일어난 틈을 타 재빨리 쳐들어온 것이었다. 자작님은 자른 높은 분들께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우리는 성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방어 장치를 풀었다. 방어 장치를 풀자, 성문과 성을 이은 길을 빼고는 모두 용암에 잠겼다. 이로서 적은 하나의 길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성벽에는 궁수들과 사격수들이 안전장비에 의존해서 적들을 성벽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막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길에도 각각 다섯 칸으로 나누어 한 칸마다 전에 사들인 다섯 명의 고수들이 그들의 병사들과 지키게 했다.
성문은 3겹에다가 가운데에 철심을 박았고, 걸쇠도 5개가 달려 부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작님을 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모시고는 다시 내려와 군사들을 지휘했다.
그러나 내 예상을 깨고 문은 쉽게 부셔졌다. 문을 부순 것은 다름 아닌 보통 사람보다 덩치가 3배는 큰 거인이었다. 그 거인은 거대한 몽둥이로 문을 부수고 들어와 군사들을 아주 떡치듯이 해치웠다.
성에서 지휘만 하던 나는 제발 5개의 방어진이 견뎌주기만을 기도했다. 그러나 곧 성벽 곳곳이 무너지고 무너진 곳으로 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허나, 다행히도 용암이 막고 있어 적들은 성으로 다가올 수는 없었다.
성벽도 무너지고 성문도 부셔진 지금, 나는 방어 1진을 보고 있다. 지금 1진은 폭탄광과 그의 제자이자 병사들이 지뢰와 온갖 여러 가지 폭탄을 사용해 적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허나 곧 적들의 사수들에 의해 그들은 모두 전멸했다. 게다가 거인 때문에 더욱 쉽게 전멸한 것 같았다. 하지만 1진은 죽어가면서 까지 자폭을 해 거인을 죽이고, 적들을 꽤 많이 죽였다. 게다가 그들이 다 죽은 뒤, 사수들이 앞서서 들어오다가 지뢰를 밟는 바람에 적들의 사수들이 대부분 죽어버렸다.
나는 1진의 폭탄광이 끝까지 혼자서라도 적을 막으려 함에 결국 울고 말았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씹으면서 그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내가 아는 동생이 죽을 때, 그저 담담히 지켜보게 될 것만 같았다. 허나 달랐다. 내 가슴살을 오려내듯 가슴 한쪽이 경련을 일으켜왔다. 나는 슬픔을 느꼈다. 나는 그가 어린 나이에 너무 허무하게 죽는 것 같아서 더욱더 슬펐다. 나는 슬픔을 느낌과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이제 겨우 하나가 죽었는데 이정도로 슬픔을 느끼다니, 만약 나머지 넷마저 다 죽는다면 어쩐단 말인가. 아마 난 잘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남은 이들만큼은 살 수 있도록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신은 한가로이 나의 기도나 들어 줄 시간은 없나 보다. 남은 네 명과 병사들은 전멸했다. 허나 나는 1진이 깨졌을 때와는 달리 덤덤한 표정으로 적들이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은 결코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은 마음으로 자작님을 모신 듯 했다.
그들은 자폭까지 해가며 적을 거의 3분의 2나 없애놓았다. 이제 남은 방어선은 나뿐이다. 나 자신 만큼은 자작님을 지켜드려야 한다.
나는 자작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적들은 올라오면서 아직 꽤 많이 남은 우리 병사들과 싸워야 할 테니 내게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나는 자작님께 먼저 정중히 인사했다.
“자작님, 불편하신 데는 없으시지요?”
자작님은 창밖을 보고 있으셨다. 아마도 그들의 죽음을 처음부터 보고 계셨던 것 같았다. 자작님은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흠칫 놀랐다. 자작께서 울고 계셨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슬프게 되었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나는 자작님께서는 잘못하신 게 없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것은 단지 말뿐인 위로밖에는 안되기에.
나는 일단 자작님의 작에 와인을 따라드렸고, 그분의 눈가를 닦아드린 뒤, 그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다시 한번 정중히 인사드렸다.
“편안하십시오.”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는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제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그의 미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그만 눈물이 맺혀버렸다. 허나, 나는 자작께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얼른 돌아섰고, 그리고 천천히 방을 나왔다.
성의 탑 중간에는 커다란 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방이 아닌 복도와 복도를 잇는 사이의 공간이다. 허나, 그곳에 커다란 시계가 있어 우리는 그곳을 시계의 방이라 부른다. 이제 나는 그곳에서 자작을 위해 마지막 전투를 치러야 한다.
나는 현재 이 방안 곳곳에 비수와 온갖 잔 무기들을 숨겨두었다. 내가 지금 몸에 두른 로브만 해도 10만여 개의 비수가 숨겨져 있다. 덕분에 그 어떤 화살이나 탄알도 이 로브를 뚫지는 못할 것이다.
복도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적들이 이곳까지 온 모양이다. 나는 자작님이 계신 방으로 통하는 문을 굳게 잠갔다. 그리고 그 문 앞에 서서 적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적들은 나를 뚫고 이문을 통과해도 자작님께 쉽게 다가가지는 못할 것이다. 자작님이 계신 곳까지 미로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탁탁탁.
발소리가 들려온다. 한 열댓 명은 되는 것 같다. 난 손을 들었다. 내 손에는 이십여 개의 비수가 들려있었다. 한 사람당 한 개씩, 많아도 두 개나 세 개를 써야 한다. 일단 나는 약을 먹어두었다. 앞으로 난 20여 시간동안은 절대로 지쳐 쓰러지거나 피곤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벌컥! 퓨퓨퓩!
문이 세게 열림과 동시에 나의 비수들이 적의 목에 가서 박혔다. 적들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갔다.
그리고 곧 이어서 수없이 많은 적들이 끝없이 들어왔고, 그들은 하나같이 나의 비수가 목에 꽂혀 죽었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들어오는 놈마다 발을 디디는 순간 죽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적들은 시체 때문에 재빨리 들어올 수도 없었다. 그렇게 적들이 죽어나가는데 아주 세 보이는, 거의 고위 기사로 보이는 한 중장갑의 기사가 부하들을 앞세워 들어왔다.
부하들은 모두 내 비수에 맞아 죽었고, 그 기사는 창을 세우고 나에게 돌진해왔다. 허나, 나는 폭탄광이 내게 주었던 폭탄 중 하나를 던져 그의 갑옷에 맞추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적들은 겁이 없었다. 기사가 죽고, 상당한 수의 동료가 죽었는데도 계속해서 물이 넘치듯이 들어왔다. 그들의 숫자가 아직도 많이 남았나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방안은 시체들과 피 냄새로 차있었다. 들어오는 적들도 뜸해졌다. 나의 로브도 왠지 좀 가벼워 졌다. 그리고 팔과 다리에 왠지 점점 감각이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하아, 하아.”
나는 분명 약을 먹어 지치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혹시 벌써 20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겠지.
적들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이상하다 싶어서 나는 문 쪽으로 가보았다. 그곳에는 탑으로 올라오는 계단 곳곳에 쌓인 시체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들어오려던 놈들이 시체를 그냥 아래로 막 떨어뜨린 모양이다. 저 탑 아래에는 시체가 아주 산처럼 쌓였나보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시체가 쌓인 것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근데 정말 이상하다. 적들이 오지 않는다. 혹시 내가 정말로 그 많은 적들을 죽인건가? 정말로 내가 그들을 다?
나는 얼른 창가로 가보았다. 창밖에는 시체가 아주 산처럼 무한히 쌓인 땅이 보였다. 그리고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내가 다 죽인 거다. 내가 적들을 모두 죽인 거다. 나는 기쁨으로 들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피 냄새도 내겐 장미향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기뻐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씨, 진짜 다 죽었나?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누구지? 혹시 살아남은 적군인가?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다. 내게는 지금 단 하나의 비수도, 무기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몸에 힘까지 없다.
#터벅.
그가 문으로 들어왔다. 나는 벽에 몸을 뉘인 채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했다. 그는 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바로 둘째 도련님이었던 것이다.
그는 방안을 찬찬히 살피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나에게로 걸어왔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나는 주위를 살피며 그를 죽일만한, 아무런 무기도 발견하지 못하고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나를 발로 툭툭 건드리더니 말했다.
“혹시 네가 여기서 저놈들을 다 죽인 거냐?”
‘그래, 내가 다 죽였다.’
이 말은 내 머릿속에서만 울렸다. 내 혀는 이 말을 내뱉기에는 너무 지쳐있었다.
“호오, 그렇다면 너는 분명 쓸모가 있어.”
그는 어느새 검을 뽑아서 내 심장을 겨누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지금 그가 나를 죽인다면 나는 편안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나는 곧 자작님을 떠올렸고, 살기위해서 몸을 피하려고 했다.
허나, 너무 지친 나의 몸은 그저 들썩거리는 정도로만 끝났고, 그 칼은 나의 왼쪽 가슴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너를 죽여야겠구나.”
나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아마도 그가 나를 천천히 죽도록 심장을 아주 살짝 피해서 찌른 것 같았다. 나는 제발 그가 자작님만큼은 못 찾기를 빌었다. 허나 그런 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슴에 칼이 박히는 순간, 자작님이 계시는 방으로 통하는 문 쪽에서 자작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돼!”
이 순간만큼 자작님이 밉고, 또 바보처럼 여겨진 적은 없었다.
“호오, 영광스럽게도 형께서 친히 마중 나오셨군. 근데 손님을 좀 많이 기다리게 한 것 같은데?”
자작님은 지금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고 계신다. 그러나 둘째 도련님의 다른 손에는 나의 심장에 꽂힌 검 말고도 또 다른 검이 들려있었다. 아무리 우리 자작님이 검술실력이 뛰어나 시다지만 맨손으로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리고 둘째 도련님은 천천히 자작께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입술을 꽉 깨물고 가슴에 힘을 푼 뒤 꽂혀있던 검을 뽑아내었다.
#푸촥!
피가 바닥을 적셨다. 내가 검을 뽐은 순간, 둘째 도련님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가슴에서 검을 뽑은 나는 둘째 도련님이 나를 돌아보는 순간 치명상에도 불구하고 양손에 힘을 주고 그를 덮쳤다. 허나, 그를 덮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도 검이 길어 그의 몸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
그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이승을 떠났다.
나는 지금 눈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희미하게 두 조각이 난 둘째 도련님의 시체와 문으로부터 나에게 달려오는 자작님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나의 심장은 멈춘 듯싶다. 나는 지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자작님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꾸벅, 하고 숙였다. 내가 자작님께 올리는 정말 마지막 인사였다. 평소와도 같이 자작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한 듯, 자작님의 울음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려왔다. 자작님은 나에게로 달려와 나의 얼굴을 만지려고 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만지기도 전에 숨을 거두어버렸다. 슬프게도 나는 그가 미소를 짓고 있었는지, 아니면 울고 있었는지, 확실하게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었다. 뭐, 나중에 저 높은 곳에서 만나면 되지. 그때도 나는 확실하게 그분을 지켜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날을 기대하며 나는 그분을 기다릴 것이다.
‘부디 저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영원한 심복입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났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깊은 잠이라 부르는, 아주 긴 여행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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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잠시동안 로그인이 안되다가 겨우 들어왓습니다=ㅁ=
정말로 로그인이 안되엇엇다죠=ㅁ=
아참, 저도 작가방 만들어줘요오~ㅠ0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