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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야기 4편

2004.11.21 15:32

케테스 조회 수:1376

후우, 6주만에 완성했네요...;;
하지만 긴시간 공들인 것 치고는 너무 짧군요...;;
5편은 금방 완성하기를 빌며...;;
끝까지 봐주시기를 바래요오~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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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야기 4편-엉터리성직자

프란시아 신력 4018년 5월 43일.
쌍둥이 국가로 불리는 프린시아와 프란시아. 그리고 그 두 국가 사이에서 거래를 트는 무역상인들은 대부분 고래를 주로 타고 오간다. 그 덕분에 메인글 초원을 건너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어렵지 않게 하늘에서 들려오는 고래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메인글 초원 중간에 위치한 몬 힐러 마을. 이 십여 가구도 채 안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메인글 초원을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마을이다.
마을의 자랑거리나 뭐 유명한 사람을 속출해 낸 적은 없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마을이었다.
가끔은 귀족들의 그나마 별로 남지도 않은 땅 싸움에서 밀려난 귀족들이나 카블라스트같은 요새감옥에서 도망친 자들이 와서 살기도 했다. 물론 이곳의 사람들은 누가 와서 살든 상관하지 않고 잘 대해주었다.
“으하암~.”
사피르는 현재 이틀 동안이나 잠도 자지 않고 걸어온 상태라 가히 비몽사몽간에 걷고 있었다. 넬슨 성을 떠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고르곤이란 녀석을 만났기 때문이다. 산 넘어 산, 강 건너 바다, 시험 후 성적표라더니 고르곤이란 녀석이 마침 다른 수컷과 세력싸움을 하다가 진 상태라서 매우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사피르는 젖 먹던 힘까지 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어쨌든 사피르는 현재 메인글 초원의 가운데 부분에 정착해 있는 몬 힐러 마을 근처에 다다랐다.
“망할 쇠고기 십 인분 같으니라고….”
사피르는 못된 송아지로부터 도망치느라 수고한 자신의 다리를 조금이나마 쉬이기 위해서 길가 주위의 나무 그늘로 들어가 앉아 휴식을 취했다.
“휘유우….”
앉자마자 다리로부터 전해지는 고통에 사피르는 한숨을 쉬었다.
“껄껄껄, 젊은 사람이 한숨은 무슨 한숨입니까?”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피르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우고는 주위를 살폈다.
“누구시죠?”
“껄껄껄, 공격태세 취할 필요는 없소이다. 정 내가 누군지 알고 싶거든 먼저 당신이 쉬고 있는 나무그늘 반대쪽으로 와보시오.”
사피르는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천천히 나무 반대편으로 가보았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았다.
“안녕하신가, 껄껄.”
“…….”
그곳에는 하얀 성직자의 옷을 입은 사람이 온 몸이 쇠사슬에 묶인 채 엎어져 있었다. 아마도 사냥꾼이 쳐놓은 함정에 걸린 것 같았다.
“껄껄, 그렇게 계속 쳐다보면 내가 부끄러워집니다. 일단 이것부터 좀 풀어주시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토론해봅시다.”
사피르는 사람이란 것을 알자 머릿속으로 다른 주문을 외웠다.
“어쩌다 거기 걸리셨어요?”
사피르가 쇠사슬에 손을 대자 손댄 곳에 연기가 일며 쇠사슬이 증발해 버렸다.
“오, 마법사셨소. 거참, 늙기 쉬운 걸 선택하셨군.”
“으음, 일단은 제 질문에 답 좀 하시죠.”
성직자는 쇠사슬에서 벗어나자 얼른 제대로 앉더니 가방을 열어 뒤지기 시작했다.
“껄껄, 길을 걷다가 문득 길이 아닌 곳으로 걷고 싶기에 이곳으로 걷다보니 이렇게 됐소이다. 오홋, 잃어버린 건 없는 모양이오. 그나저나 나이가 한 열네 살 쯤으로 보이는데 마법은 초보인가 보오? 대부분 그 나이면 손대지 않고도 녹이던데….”
사피르는 입 꼬리를 약간 올리더니 답했다.
“하핫, 동물 걸리라고 쳐놓은 함정에 걸린 맛 간 성직자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군요. 제가 워낙 늦게 배워서 그렇습니다. 근데 아직 정식 성직자도 아니고 그냥 수행자로 보이는데…어째 혼자 다니시죠? 혹시 도망자이거나 악신이라도 믿는 겁니까?”
사피르의 약간 화가 난 말투에 성직자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성직자가 웃자 사피르가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웃긴가보죠?”
순간 성직자의 표정이 변했다.
“닥쳐, 초특급 머저리 열등감 마법사야.”
“…….”

“하핫…미안하게 됐소. 내가 그런 말만 들으면 억지로라도 울컥 하는 성질이라서 말이죠, 껄껄.”
“닥치시지요, 성직자나리. 무슨 해머를 그따위로 휘두르시나?”
사피르가 비꼬자 성직자는 그저 껄껄하고 웃기만 했다.
“그나저나 댁은 이름이 뭐요? 댁도 젊어 보이는데…그나저나 성직자의 길을 걷다니…. 참 암울한 인생이로구만.”
“껄껄, 늦게 시작한 막둥이 마법사 인생도 그렇게 괜찮지는 않지 않소?”
“그래도 성직자보다는 낫다고….”
사피르는 일어서서는 멍든 눈을 문지르며 말했다.
“성직자는 어디 가시나요? 신이라도 만나러 가시나?”
성직자는 이마에 힘줄을 돋으며 일어나서는 사피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말했잖소, 수행 중이라고…. 그나저나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엘우드요.”
엘우드는 그렇게 말하며 사피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소, 엘우드씨, 그리고 내 이름은 알거 없소.”
엘우드는 아까 자신이 친 것도 있고 해서 그냥 참기로 했다.
“아까 친 거는 정말 미안하오. 그래도 사람이 사과하는데 이제는 화를 푸시지요.”
사피르는 갑자기 상냥하게 나오는 엘우드의 태도에 화를 풀고는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뭐, 미안하게 됐네요. 제가 성격이 상당히 이상한 사람 밑에서 배워서 성격도 같아져버린 것 같군요. 제 이름은 사피르입니다. 그리고 나이도 비슷한데 어색한 말 쓰지 맙시다.”
엘우드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좋지.”
“하핫….”
사피르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엘우드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몬 힐러 마을로 가는 거야?”
“응, 메인글 초원에서 갈 데가 거기뿐이 더 있나?”
엘우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건포도를 한 줌 꺼내서 먹었다.
“후아…메인글 초원은 정말이지 혼자 다닐 곳이 못 된다니까….”
사피르의 말에 엘우드는 씨를 뱉어내고는 찬성했다.
“맞는 말이야. 고르곤이랑 오크들이 우글대니…. 며칠 전에는 히포그리프 세 마리랑 고전했다고.”
사피르는 엘우드의 손에 들린 건포도 몇 개를 슬쩍 빼내어 입에 넣었다.
“으음, 먹을 만 하네.”
“그렇지.”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사피르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며 걷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허둥지둥 대더니 등 뒤의 메어져 있던 반조를 꺼내 들더니 손가락으로 현을 한번 켰다.
#차라랑~.
아름다운 리듬이 들려왔고, 엘우드는 트림을 한번 하더니 사피르의 반조를 유심히 보았다.
“오오, 악기도 다룰 줄 알아? 근데 잘 다루기는 하나?”
엘우드가 무심히 내뱉은 말에 사피르는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들어보겠어?”
“…….”
사피르는 반조를 천천히 키기 시작했다.
“잘 들어, 이 몸이 지은 노래라고.”
엘우드는 천천히 들려오는 리듬에 약간 표정을 풀었다.
“제목은 뭔데?”
“제목은 ‘다른 날’”
“센스가 없으시군.”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
나의 눈은 안 보고 다른 곳만을 응시하네
내 팔자 별 하나 없는 세상에 날로만 자라가네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아는 것도 없지만
오늘 만큼은 평온한 마음으로 나의 보금자리에 있으리
집채만한 호랑이가 들이닥쳐도 모든 것은 다른 날로

힘이야 없지 나에겐 없지 세상은 원하지
무엇을 원하나 내게는 없네 나만을 응시하는 눈은 다른 곳을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소중함을 간직한 돌은 다른 곳으로

사람이 중한가 하지만 사람이 없네 내 손안에 쥘 수 있는
가능한가 사람의 마음이 나를 향하지 않고도 이곳에 있는가
뜨는 기분일까 이것이 소원일까 나의 희망은 져버리고 다른 세계로

마음 안에 없는 것은 하늘 위에 서서 나를 바라보네
사람이 있다 믿는다고 정말로 있겠는가 쳐다본다고 보겠는가
나를 바라보는 믿음은 오직 하나로 나의 눈을 사로잡아 다른 곳에

원천의 힘을 없애 나의 머리를 기르고 오직 나만을 위한 춤을
내가 믿어도 나를 봐주지 않는 눈마저도 돌리는 나만의 춤을
절대로 모르는 글자를 써가며 나의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다른 춤을

역시나 오늘도 포기하고 내일을 기약하는 문장을 달아 가슴에 새기네
불빛 하나 없는 사막에 던져져도 손으로 더듬어 오아시스를 찾는 행운이
그대와 나와 동무와 친지와 동물들과 사람들과 신들의 세상에도 없는 행운이
오늘은 찾아오나 이해 못 할 모험과 함께 나를 따라다니며 기약없는 다른 날로

언젠가는을 말하는 이들에게 알 수 없는 해골문양의 축복이 걸어지기를 빈다
모든 것은 다른 날로 다른 곳으로 다른 세계로
나의 눈을 이해하는 곳으로

#디리링~.
“어때?”
연주를 마치고서 묻는 사피르의 물음에 엘우드는 그저 멍하니 사피르만 쳐다보았다.
“…….”
“어떠냐니까?”
사피르가 재차 묻자 엘우드는 깜짝 놀라더니 정신을 차리고는 사피르를 보았다.
“아, 좋았어. 정말이지 대박 나겠군. 근데 듣다가 생각한 건데…정신이 좀 멍해지던 걸…. 그거 혹시 마법물체냐?”
사피르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맞아.”
엘우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사피르를 응시했다.
“호오, 설마 자네가 걸은 건 아니겠지? 보아하니 아직 자격증 따위는 없는 것 같은데.”
사피르는 약간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난 이런 거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엘우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냐 아냐, 이런 거 가 아냐. 이렇게 악기같이 부서지기 쉬운 물건에 연금술을 행하려면 적어도 우리나이의 두 배나 세 배 정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일 거야. 그리고 아마 난쟁이 산에서 ‘드워프 정식 연금술 2급 자격증’ 정도는 땄을 거라고.”
“맞아, 그 사람이 내 스승이야.”
엘우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옷, 그 사람이 마법도 가르쳐 준거냐?!”
“응”
“와앗!”
엘우드는 정말로 신기해했다.
“근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거야?”
그는 갸우뚱해하는 사피르의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어 사피르의 심성에 돌을 던졌다.
“근데 어째서 넌 그따위냐!”
“내가 뭘!”
엘우드는 사피르의 말은 무시하고 그저 자신의 질문만 내세웠다.
“그 사람 지금 몇 살이야? 뭘 하고 있지?”
“으음…. 아마 여든 살이 조금 넘었을 걸? 그리고 지금은 이 좁아터진 세상이 싫어서 은둔하며 살아가고 있어.”
엘우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중얼거렸다.
“으음…하긴 여든이면 그 정도는 되겠다. 요즘은 연금술을 배우려는 사람은 없고 그저 어떻게든 귀족들 편에 붙어보려고 공부만 하는 녀석들 세상이라서….”
“귀족들? 그들에게 가면 뭐가 좋나?”
“응, 그들이 현재 다른 종족을 내 쫓고 이 세상을 지배하려고 군대를 모집하고 있거든.”
“흐음, 용들이 가만히 있을까?”
“가만히 안 있을 걸…. 어쩌면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날지도….”
사피르는 엘우드의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큰일인데…. 막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
“없지.”
“대답 한번 간단해서 좋군.”
그들은 그렇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계속 걸어 나갔다. 그리고 두어 시간 쯤 걷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은 전속력으로 마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어느새 둘은 마을에 다다라 입구까지 오게 되었고,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단단한 밤나무로 꼼꼼하게 틈 하나 없어 보이도록 아주 잘 지어진 마을 장벽과 몬 힐러 마을을 최초로 세운 종족인 오크족들이 마을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후우, 오크들이 꽤나 많은데?”
엘우드가 주머니에서 돈을 얼마 꺼내며 말했다.
“으음, 사피르 자네는 먼저 어디 갈 생각인가?”
“으음, 그 말투 쓰지 말라니까.”
“어디 갈 건데?”
“난 먼저 상점가에 가서 필요한 것들이랑 기념품 좀 사야지.”
엘우드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사피르의 말에 사피르를 쳐다보았다.
“그럼 난 여기에 천막교회나 갔다 올게.”
“그래, 그럼 안녕. 만나서 반가웠다.”
사피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그리고는 ‘상점가’라고 쓰인 팻말을 보고 그쪽으로 가려는 순간, 무언가가 사피르의 등 뒤에 매여져 있던 반조를 잡아 당겼고, 그 덕에 사피르는 짧은 기침을 토해냈다.
“컥!”
사피르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뭐…뭐야?”
반조를 잡아당긴 사람은 다름 아닌 엘우드였고, 엘우드는 약간 불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그냥 가려는 건 아니겠지, 자네?”
“자네?”
“너….”
사피르는 목을 슬슬 문지르며 반조를 다시 제대로 맸다.
“그럼, 뭐 어떻게 하라는 건데? 너랑 같이 교회라도 가리?”
엘우드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앞으로 그냥 동행하는 게 어때?”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겠지.”
“어찌 됐든.”
사피르는 입맛을 하번 다지더니 엘우드를 보고는 말했다.
“뭐, 좋아. 이렇게 여러 명이서 여행하는 게 요즘 유행이라는데….”
“좋아, 그럼 난 성당 갔다 올 테니 넌 상점가에 갔다가 여관에서 만나자.”
엘우드는 그 말을 끝으로 얼른 성당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사피르는 당황해하며 엘우드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여관이 한두 군데가 아니잖아!”
엘우드는 뛰다말고 돌아서서 외쳤다.
“이 마을은 여관이 하나 밖에 없어! 사람들한테 촌장집이 어딘지 물어보면 돼!”
“이런….”
“그럼 간다!”
“그래, 잘 갔다 와!”
어느새 엘우드는 저만치로 사라졌고, 사피르는 혼자서 휘파람을 불며 상점가로 향했다.
#땅, 땅, 땅.
몬 힐러 마을의 상점들은 전부 다 하나같이 오크들이 경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오크들이 직접 만들어 내다 팔기 때문에 없는 물건들도 꽤 많아서 여행자들을 당황케 하는 일들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장인이 직접 만드는 만큼,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밖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것들도 꽤나 많았다. 예를 들자면 힐 빈을 이용해 만든 술, ‘슈란’은 여행자들이 몬 힐러 마을에 들릴 때, 꼭 사가는 것 중 하나였다.
이곳에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오크 스미스도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보통 장인과 다를 게 없으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무 껍데기와 풀로 갑옷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오크들이 나무 껍데기나 마른 풀로 만든 바크 아머를 입지만, 사람들이 직접 오크 무리로 들어가서 갑옷 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이 오크 스미스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크 아머가 상당히 가볍고 나무와 풀로 만들어졌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자주 사가는 물품 중의 하나였다. 물론 캐러밴 상인들도 많이 사가고 무역상인들도 가끔 대량주문을 하기도 했다.
“무얼 사면 될까나….”
사피르는 상점가를 둘러보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골라보고 있었다. 쓸데없이 돈 낭비를 할 돈의 여유 따위는 없었기에 그는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일단 랜턴, 소형 망원경, 갈고리 사다리, 밧줄, 부싯돌키트, 여우 털 침낭, 철제 컵이랑 그릇, 그리고 포크랑 스푼 정도로…아니, 더 필요한 게 있는지 둘러봐야해. 전처럼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렇게 말한 후, 그는 한 가게를 약간 스쳐지나가다가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앗, 악기상점이다!”
어린 아이가 사탕가게를 발견한 듯이 환한 미소를 띠며 그는 악기상점을 향해 달렸다.

#딸랑.
“에휴…. 뭐, 볼만한 악기는 없었네.”
사피르는 그렇게 악기상점을 나오며 불만을 내뱉었다. 사피르가 들어갔던 상점은 악기상점이면서 동시에 옷을 파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잘 팔리지도 않는 악기보다는 옷을 더 많이 파는 곳이어서 그곳에는 사피르가 흥미를 보일만한 악기는 없었다.
“쓸데없이 망토만 샀네.”
“껄껄, 여행자 주제에 망토가 쓸데없다니…완전 허접일세, 그려.”
사피르는 얼른 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대장간이 있었고, 그 대장간에서 한 오크가 의자에 앉아 단검을 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사피르는 그가 목소리의 주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껄껄, 뭘 보나? 내 얼굴 구멍이 나다 못해 산산조각 나겠네, 껄껄.”
“대장장이 이신가요?”
오크는 껄껄, 웃어대며 대답했다.
“그럼 지나가던 청소부가 여기 앉아 단검을 다듬으려고?”
“망토가 무슨 쓸모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사피르가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묻자, 그 대장장이는 단검을 튕겼다. 그리고 사피르는 얼떨결에 그 단검을 공중에서 낚아챘다. 단검을 낚아채더니 사피르가 한마디 했다.
“이제 내거.”
“웃기고 자빠졌네.”
오크는 콧방귀를 한번 뀌더니 일어났다.
“망토는 화살을 막을 때도 쓰이고 추울 때 바람막이도 되어주고, 더울 땐 햇빛을 막아주지는 못할망정 흡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행자에게는 꼭 필요한 물품이라고.”
“오호, 그럼 잘 산거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그 단검 이리 내놔.”
사피르는 단검을 내어주며 웃었다.
“충고 감사해요.”
대장장이도 단검을 받으며 씨익 웃었다.
“뭘, 이 마을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묻지 말고 우리 촌장님께 물어봐. 그리고 뭐, 같이 여행할 동료를 찾는다면 나에게 물어봐도 좋고.”
사피르는 늘어져 있는 물건들 중에서 쓸만한 게 없는지 고르다가 굵고 넓적한 단검을 하나 집어 들어 살펴봤다.
“동료는 구했어요. 그것도 성직자로.”
오크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짧게 박수를 몇 번 쳤다.
“성직자라…성직자가 동료라면 여행이 상당히 편할 거야. 잘 골랐네. 근데 지금 만지고 있는 그 나비단검 살 건가? 아니라면 내버려두시지?”
“으음, 여기 스태프는 없나요? 완드나 메이스 종류라도.”
“흐음, 마법사인가? 지루하겠구먼. 뭐, 공부 열심히 해서 귀족에게라도 붙을 심산으로 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미안하게도 완드는 없네. 정 구하고 싶다면 저기 여관 옆의 무당집에 가봐. 거기가면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 잘 가게.”
사피르는 대장장이와 작별한 뒤, 천천히 걸어서 여관을 향했다. 가는 길에 근처 식당에 들려 야참으로 먹을 닭다리바스켓세트도 사들고 들뜬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여어!”
사피르가 여관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엘우드도 딱 맞춰서 와주었고, 엘우드의 손에도 야참으로 먹기 딱 알맞은 닭다리바스켓세트가 들려 있었다.
사피르는 태연하게 방을 한 개 잡았고, 엘우드는 여관주인에게 들킬세라 사온 음식들을 몰래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작전성공!”
닭다리를 들고 좋아하는 엘우드를 보며 사피르는 건방진 웃음을 지었다.
“하, 작전성공은 무슨…그냥 대놓고 들어왔어도 아무 말 안했을 거다.”
엘우드는 닭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제안했잖아. 난 생각조차도 못했다고.”
“시끄럽다.”
사피르는 짐을 한쪽 구석에다가 몰아놓고는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으며 닭다리를 뜯었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의 앞에는 ‘처키사이드의 연금확장술’ 이라고 써져있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엘우드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더니 말했다.
“이봐, 사피르.”
사피르는 닭 뼈를 아무데나 던지더니 하나를 다시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응?”
“우리 여기 근처 던젼에 가보지 않을래? 찾기만 해도 상금이 1500셀린이고, 내부를 전부 확인하고 오면 1000셀린을 더 준대. 그리고 어쩌면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보물사냥, 현재 여행자들 대다수는 던젼을 찾고 그리고 그곳의 주인들을 없애 그곳의 보물들을 챙기는 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도둑소굴을 정리하고는 시청으로부터 현상금을 챙기기도 했다. 이렇게 던젼을 뒤지면서 돈을 받고 보물을 챙기는 것을 우리는 보물사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해보지, 뭐. 여행의 묘미는 보물사냥에 있는 거잖아.”
“으음, 맞는 말은 아니지. 던젼이 그렇게 넘쳐나는 건 아니니.”
“어쨌든 해보자고. 난 처음으로 해보는 거란 말이야.”
“그래, 그럼 서명해서 내일 시청에 갖다 낸다.”
엘우드는 종이 한쪽에 엑스를 그렸고, 간단히 서명했다. 그런 다음, 종이를 곱게 접어서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사피르에게 물었다.
“아참, 전부터 묻고 싶었던 건데, 넌 여행의 목적이 뭐야?”
사피르가 닭다리를 먹다말고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반문했다.
“나?”
“그래, 너.”
사피르는 엘우드의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으음, 나한테 사부가 한명 있었거든. 근데 그 인간이 나보고 세상을 돌며 노래를 해주고 오래. 그리고 나중에 성장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래. 하지만 이건 그냥 둘러대는 거고.”
“응?”
갑자기 사피르의 얼굴에 왠지 모를 어둠이 깔렸다.
“어떤 놈이 운명이 어쩌니 하면서 날 쫓고 있어.”
“그게 누군데?”
“몰라. 하지만 말투로 봤을 때는….”
엘우드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사피르의 말에 빠져들었다.
“봤을 때는?”
사피르는 깊게 한숨을 쉰 뒤, 정말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변태였어.”

사피르가 글로스터의 제자로 지내면서 평온하지 않은 평온한 나날을 보내다가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밤. 누군가가 글로스터의 오두막집 앞에서 글로스터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물론 사피르는 오두막 안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다 듣고 있었다.
“으음, 말했잖아. 난 없다고.”
글로스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글로스터와 얘기하는 상대도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를 합쳐놓은 것 같았다.
“오호호, 한번만 더 말하면 정확히 두 번째야.”
“처음 듣는다는 말이란 뜻이잖아, 바보변태야.”
“으흠, 어쨌든 당신이 제자가 없다면 저 오두막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죠?”
그 변태라 불린 자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멍청아 저건 도둑이라니까!”
글로스터는 그 한마디에 자신도 그와 그다지 다를 게 없는 정신연령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도둑이 네 집에서 자는데 그런 식으로 말할 리가 없잖아, 이 멍청이 할배야!”
“야이 호호변태야, 저 도둑이 피곤해보여서 잠시 눈 좀 붙이게 놔두는 거야!”
“오호호, 그럼 내가 보안청으로 모셔가도록 하죠, 뭐.”
갑자기 그 변태가 세게 나온다.
“안돼,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저리가, 이 삼류 꽃팬티 뒤집어 쓴 변태야.”
사피르는 그가 정말로 꽃팬티를 뒤집어 썼는지 궁금해졌다.
“자꾸 변태변태 할래?!”
“그럼 변태를 뭐라 부르냐!”
맞는 말이다.
“으흠, 어찌되었든 간에 난 정확히 3일 후에 다시 올 거예요. 그러니….”
“…….”
글로스터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동안만큼이라도 잘 대해주고 해주지 못한 것 다해주세요. 당신이라서 3일의 기회를 드린 겁니다. 에휴, 오늘 가면 또 혼나게 생겼네.”
“…….”
“그럼 안녕히….”
“고맙다, 페스터.”
그 특이한 목소리의 변태 이름이 페스터인가 보다.
“뭘요, 어쨌든 정말로 가봐야겠네요. 그럼 이만.”
그의 인사를 끝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 글로스터의 한숨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문이 열린 다음, 글로스터가 들어왔다. 사피르는 얼른 잠자는 척을 했고, 글로스터는 사피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자신도 잠자리에 누워서는 곧장 코를 골기 시작했다.
‘페스터…그게 누굴까?’
사피르는 글로스터와 페스터란 자의 대화를 생각하며 깊이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