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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The Fey Tarot - Ⅱ. The Seer

2004.11.28 05:36

네모Dori 조회 수:1829




Ⅱ. The Seer

모든 것에는 그 대가가 필요하다.
가치 있는 것을 얻고 싶다면
더 많은 것을 포기하라.

-발단, 지식, 지성, 스승, 끈기 있는 지도, 힘든 일을 통해 얻어진 지식





“어서오십쇼오-!”
“여기가 와테르 제 일의 여관인가?”
“그럼요. 여기가 바로 ‘정군장’입니다”
“종군장?”
“정군장이요. 세분이신가요? 식사? 침대? 목욕?”
“일단은 식사부터 하지”
“이쪽으로 오세요”

깍듯하게, 친절하게, 상큼하게! 해질녘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역시 유명한 여관은 달라.
손님맞이에 안내하고, 주문받고, 상치우고, 바닥 닦고, 접시 나르고... 바쁘다 바빠. 쉴 새가 없군.

“어이, 신참. 어.......”
“위실이요. 뭐 시키실 일 있으세요?”
“아니아니, 이제 좀 쉬라고. 밥 먹고, 밤에 다시 내려오거라”
“네엡!”

보자보자, 오늘 저녁은…… 오호! 쌀케익! 아싸아싸, 룰루랄라. 유휴-! 이거 진짜 맛있던데.
계단을 폴짝폴짝, 복도를 성큼성큼, 그리고 방문을 활짝!

“라메나 밥 먹-” “꺄아-!”
-퍼억, 우당탕, 와지끈-




“............ 화 많이 났어?”
“치한”
“...... 실수잖아, 화 풀어”
“변태”
“... 미안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풀고 이거 같이 먹자”
“야만인”
“누가 그러기에 문도 안 잠그고 옷 갈아입으래!”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 히익! 지팡이는 언제 잡은 거야!

“으악” -퍽퍽-
“미, 미안해” -쿡 퍽 쾅-
“미, 미안, 사, 살려줘” -따악! 퍽-

크흑. 몸도 아프지만 억울한 내 마음이 더욱 아프다. 보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내가 본건, 날라드는 베개뿐이고 내가 들은 건 찢어지는 비명뿐이라고! 아고고고. 저 지팡이는 금강석이냐? 집 떠나고 눈물 보이는 날이 많구나. 훌쩍

“흥, 치한변태야만인! 으으음! 뭐 이정도로 해 두지”
“... 네엡”
“대신! 히힛, 음음. 이 쌀케익은 내가 다 먹도록 하겠어”
“응? 뭐, 뭐라...”
“불만있어!”
“아, 아니요. 다 드세요”
“이히힛”

눈물이 앞을 가리는고나. 아아. 쌀케익. 훌쩍.




와테르에 온지도 벌써 10여일 째다. 예정대로라면 3일정도 머무르고 떠났겠지만, 세상만사가 계획대로 돌아가면 재미없잖아? 덕분에 여행경비도 보충하고, 따끈한 돌방에서 지친 몸도 녹이고, 좋아 좋아. 세상은 아름답고 내일은 밝은 미래가! 오오오, 푸른 하늘이! 눈부신 태양이!
젠장, 아무리 낙천적으로 생각하려 애써도 공복에 짜증만 치밀어 오른다. 나쁜 라메나, 못된 라메나, 치사한 라메나!
…… 증오를 불태워 봐도 배고픈 건 나아지지 않아.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져 간다. 아아, 이제 팔이 움직이지 않아. 눈도 가물가물. 이대로 끝인가? 불쌍한 위실은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이렇게 죽어갑니다. 귓가에는 나를 부르는 천사의 목소리가…… 위실, 위실…….

“위실, 위실. 눈 좀 떠 보게”
“아…… 앗! 정군씨?”
“많이 피곤한가? 일하다 조는 일은 한번도 없더니 말이야. 오늘은 그냥 일찍 쉬게. 내일은 중요한 날이잖은가?”

하지만 지금 제 문제는 쉬는 걸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구요. 음식! 양분! 에너지! 라고 해도, 또 주세요, 할 수도 없…….

-꼬르륵-
“응?”
-꼬르르륵-
“아하하하. 오늘 저녁이 적었나보군. 역시 청춘이구만? 하하하. 부엌에 쌀케익 남은 거 더 있으니 가지고 올라가 먹게. 오늘 일은 이쯤해도 되”
“감사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군씨는 너무 친절해. 신기한 음식도 많이 아시고. 도련국 사람은 다 그런 걸까?
정군장은 와테르에서 제일 큰 여관중 하나다. 정군씨가 10년 전쯤에 이리로 정착해서 세웠을 때는 1층에 불돌방만 있는 여관이었지만, 불돌방이 대 히트를 쳐서 떼돈을 번 후에 증축하고 개축하고 해서 지상3층, 지하1층의 대 여관이 되었다. 정군씨도 지금은 관리만 하고 계시다.
외지인에 아는 이도 없는 내가 일자리 얻은 것 자체가 행운인데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건 기적이야. 대접 잘해주시지, 숙식 해결되지, 페이도 두둑하지. 후훗.

“라-메-나-”
“아, 위실!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네?”
“너도 좀 도와봐라”
“일? 싫다. 돈은 남자가 버는 거야”

으윽. 지출의 80%는 네 식비라고! 무슨 여자가 그렇게 많이 먹냐? 라고 해도, 입 밖으로 꺼냈다간 아까전의 일이 반복되겠지. 에효에효. 오늘은 피곤해요.
오우이우오! 맛있는 쌀케익이 나를 부르는고나!




와테르를 감싸고도는 리벨은 와테르 북쪽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큰 줄기는 도시를 둘러가고 작은 줄기는 도시를 가로지른다. 북쪽에서 흘러들어온 강은 도시 중심부에서 다시 둘로 나뉘어 본류와 합치게 된다. 즉 와테르는 리벨에 의해 3등분되는 셈이지. 그림이 그려져?
이슬의 집은 리벨이 갈라지는 그곳, 와테르의 한 복판에 있기에 도시 어느 곳에 서도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다. 10여 일간 100번도 넘게 봤지만 정말 보면 볼수록 신기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경이로운 모습에 숨이 막힌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도 못하겠다. 이음새가 없으니 벽돌도 아닐 테고, 저 큰 것을 한번에 주조한다는 건 말도 안 되니 철판도 말이 안 된다. 아니 그걸 떠나서 저런 빛을 발하는 게 있긴 있나?
쏟아진 햇살은 무지갯빛으로 흩어지고 거대한 무지개가 저 안에서부터 비치 운다. 그러면서도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머금어 빛나는… 뭐랄까, 마치

“물방울, 거대한 물방울 같아”
“정말… 이름 그대로 이슬의 집이군. 작명센스 최곤데?”

다리를 타고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 다시 나선계단을 올라 출입구로 향한다.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길. 두 번째 오는 길이라 여유가 생긴 것인지, 저번에는 그냥 지나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리 난간 사이사이에는 건물 외벽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 졌음직한 기둥이 있는데, 햇빛을 받는 부분은 백색을 머금고, 그늘진 곳에서는 물빛을 머금고 있다. 신비로워 신비로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푸른빛의 법복을 입은 사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맞이한다.

“무슨 용무이십니까?”
“순례의식과… 어……”
“마법사에요”

선한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친다. 저번에 문 지키던 사람이 아니군. 이 사람도 마법사는 신기한가보지?

“증명해주시겠습니까?”

증명? 라메나의 지팡이가 신비로운 궤적을 그리며 움직인다. 복잡하지는 않지만 단순함이 반복되면서 난해해진다. 푸른색의 도형이, 완성되는 순간 나타나 빛을 발했다. 우와. 저게 증명이구나.

“마법사이시군요. 두 분 다 삼층으로 올라가세요. 아를레아님이 맞이하실 겁니다. 이층에서 목적을 물으시면 이 패찰을 보여주십시오”

스콜라드 님을 상징하는 푸른 버들잎 모양의 패찰. 통행증인가 보다. 예쁜데? 저번에 왔을 때는 물의 현자님이 안 계시다며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었지.
벽면을 타고 빙빙 도는 계단을 오르는 길. 외벽이 머금은 빛은 바깥쪽 뿐 아니라 안쪽으로도 충분히 밝게 뿌려주었다. 안에 있는 모든 것(벽, 선반, 계단, 가구 등등)이 물빛의 신비로운 물질로 되어있었고 외벽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빛을 머금고 있었다. 빛의 벽면을 따라 빛을 걸어 올라가는 길. 아니, 빛나는 물 속에서 반짝이는 수면 위를 걸어가는 기분.
환상 속을 헤엄치며 걷는 꿈을 맑은 목소리가 깨트린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의 담당자인 아를레아라고 합니다”

물의 현자님이신가? 아를레아님?

“순례자 분과…… 마법의 아이 인가요?”

마법의 아이? 마법사라고 안부르네. 어리다고 그러는 걸까?
물의 현자님…… 아를레아님이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킨다. 초점이 없는 듯 하면서도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눈. 부드러운 인상인데도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먼저 순례의 의식부터 하지요. 남자 분 먼저 따라오세요. 여자 분도 같이 가시겠어요?”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인데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차가운 사람 같아.
고개를 끄덕인 라메나와, 아를레아님의 뒤를 따라 걸어간 곳은 신비로운 방이었다. 정확하게 건물의 위, 아래, 양옆으로 위치되도록 설계된 듯한 이 방은 더욱 투명하게 빛나는 물질로 이루어져 거대한 이슬의 집 중간에 떠 있는 기분을 준다. 머리위로는 하늘이 보이는 듯, 아래로는 리벨이 비치는 듯.

“그럼 순례의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문양의 가운데에 가만히 서 계세요.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우으으. 엄청 긴장되네. 바닥의 문양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선을 그려내고 있다. 6방향에서 시작된 단순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그려내며 전체를 이루고 다시 6방향으로 이어지는. 뭘 상징하는 거지? 에…… 익숙한 문양인데. 어디서 본 듯하고 말야.
내가 가만히 서서 바라보자 아를레아님이 나직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이 느낌도 마법 같은데? 오오! 시작이다!

“라 레르안 데 마리안. 그대 고난의 여정에 행운을. 그대 배움의 자에게 축복을”

지팡이를 들어 내 머리, 어깨, 팔, 손을 차례로 두드린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물방울이 폭발하듯 피어올라 나를 적신다.

“라 레르안 데 마리안. 그대 탁해진 마음을 여기에 씻노라”

손을 들어 내 이마를 짚는다. 물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손. 차가운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지며 뼈 속까지 스며든다. 소름이 돋는다.

“라 레르안 데 마리안. 그대 상처받은 영혼을 여기서 보살피노라”

그녀는 조용히 읊조리며 문양의 한쪽 끝에 지팡이를 대었다.
“라 레르안 데 마리안. 라 레르안 데 마리안. 라 레르안 데 마리안. 라 레르안 데 마리안......”

한 끝에서 흘러간 빛이 전체를 따라 돌고 환하게 비춘다. 너무 긴장해서, 아까 전 적셔진 물이 내 몸속으로 흡수되는 느낌마저 느껴진다. 라 레르안 데 마리안.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이 무한히 반복되면서 긴장이 풀리고 평안해진다. 따스한 봄날 잠 오듯 나른해져 간다. 라 레르안 데 마리안…….




순간 빛이 사라지고 정신이 확 든다. 아, 끝인가?
아를레아님이 말을 건넨다. 미소라도 지어주면 좀 좋으련만.

“순례의 의식은 모두 끝났습니다. 다음 순례지 는 씨앗의 집이지요? 앞으로의 여정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가, 감사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문양을 빠져나오는 나에게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대는 이 여행에서 바라는 것을 얻겠지요. 소중한 것을 잃게 되겠지만”

뭐, 뭐라고? 놀라서 돌아보았지만 미동도 없이 뒤돌아서 있는 그녀가 보일 뿐이다. 잘못 들었나?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이제는 라메나가 서있다. 하지만 나와 다른 건 아까부터 아를레아님과 같이 뭔가 계속 말하고 있다는 것. 들리기는 들리지만 질문도 이상하고 대답도 이상하고.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말을 나누고 있다.

“심연은 깊다”
“바다는 넓지요”
“빈데르 데 오르테가의 뜻은 고귀했어”
“나는 하늘을 떠날거에요”
“날개 잃은 새는 다시 날아오르지 못해”
“심연을 건널 때부터 돌아갈 길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를레아님이 고개를 돌려 라메라를 바라본다. 라메나도 지지 않고 응수한다. 침묵. 침묵.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들에게서 감히 깨트릴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나까지 덩달아 다시 긴장되네. 라메나가 저렇게 결의에 찬 표정을 지은 적이 있던가? 아를레아님은 그럼에도 아까와 똑같은 표정.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침묵을 깬 쪽은 아를레아님이다.

“너는 처음이 아니지만 마지막도 아니다. 같은 길을 걸어간 자는 많았지만 돌아온 자는 적었다. 결단은 네가 내리는 것이고 나는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이다. 명심하라,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명심하라, 지금의 의지가 탁해지지 않게, 스며들지 않게. 새겨두어라, 지금 이 순간을”

한없이 느려진 시간 속에서 한없이 느리게 올라가는 지팡이의 모습이 눈을 가득 채웠다. 물빛 보석이 반짝인다고 느낀 순간, 이미 방 전체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린 빛과 라메나와 아를레아님, 두 어둠이 보일 뿐. 아니, 어둠은 라메나이다. 모든 것이, 아를레아님 마저 빛 속에 삼켜지는데 라메나는 어둠이다. 어둠이란 건 빛의 핵이기 때문일까?
한없이 계속될 것 같은 정지영상이 다시 흐른다. 지팡이가 움직이고 빛이 사그라들면서 한곳으로 모여 간다.

“빈데르 데 오르테가의 의지여. 여기 그대 약속을 기억하나니. 그대의 힘 중 하나를 돌려드리나이다”

지팡이 끝의 보석으로 모여든 빛이 다시금 뿜어져 나간다. 이번엔 한 방향, 하늘을 향해서. 첨탑의 중심에 부딪힌 빛은 건물전체로 퍼지고 빛 중심에 서 있던 라메나는……
라메나!

“라메나!”

어떻게 된 거야, 왜 쓰러져 있어! 뭔가 잘못됐나? 숨은, 숨은 쉬고 있는데, 정신 차려. 왜 이렇게 된 거지? 라메나? 라메나?
라메나를 흔드는 내 어깨에 차가운 손이 닿는다.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무표정한 그녀가 보인다.

“그녀는 괜찮아요. 잠시 잠든 것뿐이에요”
“어, 어째서”
“일단 2층의 휴게실로 옮기지요”




라메나는 깨어나지 않았다.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편안한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내고 있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를레아님은 단지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는 것뿐이라고 나를 안심시켰지만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겠다.
어느새 하늘에는 달이 떠올랐다. 이슬의 집을 이루는 물질은 빛을 흡수하여 다시 발하는 성질을 가졌나 보다. 노을을 머금어 붉게 빛나더니 이제는 부드러운 푸른 달빛을 뿜어내고 있으니까. 보름이라 더욱 빛이 밝은 걸까. 그래서 달빛 아래라서 라메나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이는 걸까. 얼굴을 가리우는 은발이 더 빛나는 걸까.

“아를레아님이 찾으십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신관이 나를 부른다. 아니 아직은 사제인가. 가슴에 푸른 버들잎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으니. 푸근한 미소를 짓는다. 라메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하긴 내가 있다고 뭔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3층은 2층보다 더욱 밝았다. 달과 더 가까이 위치하기 때문에? 아니면 낮의 그 빛이 남아있어서?
아를레아님은 처음 보았던 그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한밤이지만 이렇게나 밝으니 따로 조명도 필요 없나보다. 하긴, 책상도 빛나고 있으니 더 무엇이 필요하리.

“그녀, 라메나는 괜찮을거에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이곳은 이슬의 집. 치유와 정화의 공간이니까요.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날 테지요. 당신도 이곳의 힘이 느껴질 텐데요? 특히 당신이라면”

힘…… 그러고 보니 어제 그렇게 피곤했고 아침에도 나른했는데 지금은 말짱하구나.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나 자신에 대해선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네.

“그녀의 일로 불렀어요. 그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사이죠?”
“아…… 저, 이름과…… 그리고 마법사라는 것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그런가요”

한달이나 함께 다닌 사이이지만, 단지 여행 동료일 뿐이겠지.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자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온다.
아를레아님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은 분명히 벽 너머에 있는데, 밤하늘은 보이지 않는데, 달만은 뚜렷이, 아니 더 크게 보인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이 오히려 차가운 달빛 속에서 생기를 띄어가는 것 같다. 맑은 눈동자 가득 푸른 달을 품고 그녀가 속삭인다.

“새장에서 태어난 새는 바깥을 동경하지요.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있는 새장 안에서, 햇살과 구름과 하늘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할 테지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보름처럼 하얗다.

“하지만 새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새는 먹이를 구할 줄 몰라, 결국 굶어죽고 말겠지요. 아름다운 햇살과 구름과 하늘 속에서”
“저… 무슨 말씀이시죠?”

놀랍게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미소지만, 그 표정은 처음 볼 수 있는 변화였다. 차갑게 느껴지던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따스하게 들려온다.

“항상 곁에 있어주세요”




달빛은 별빛을 타고 온 하늘에 뿌려지고, 어두움 밤의 리벨엔 The Seer의 보름과 이슬의 집이 합께 비치운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리벨 가운데 솟아오른 달.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두개의 달은 한없이 밝게 빛나고, 물의 도시 와테르에는 빛을 담은 강이 쉼 없이 그리고 고요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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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말하듯,
오탈자 지적 & 비평 은 너무나도 바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