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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로엘 로자린느의 취중진담 - 下

2007.01.18 08:06

정군 조회 수:11011




루나 로엘 로자린느의 취중딘담 - 下

응?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해? 으음. 하지만 나도 여자라구.
가끔은 그런 감상적인 기분이 될 때도 있는 법이란 말야. 게다가 에인과 리온 사이가 얼마나 좋아보였는데. 아마 누구라도 그 두 사람을 봤으면 사랑을 하고 싶어졌을 거야.
그 두 사람, 쭉 함께 여행을 하는 중이라 했는데... 부러워. 지금은 아마 결혼도 했겠지? 아앙, 왠지 로맨틱해. 아아 나도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하면 되지 않았냐구? 하, 누군 하기 싫어서 안 했나. 그러고 보니 아까 얘기하다 또 샛길로 빠졌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응. 나 때문이야? 헛... 소리가 아니네. ... ... 에이 몰라. 결론은 나도 할 수만 있으면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이거지.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 하긴 시작부터 꼬였으니까.
내가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됐는지는 아직 설명 안했지? 음... 그래. 어라. 안주 다 떨어졌네. 아줌마! 여기 안주 좀 더 가져다줘요오-. ...
아, 또 얘기 끊겼구나. 미안, 미안.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사실 그게 말이지, 내가 원해서 여행을 하게 된 건 아니라서 말이지.

언제더라. 아무튼 집나갔던 우리 언니 때문인데. 그... 우리 언니, 집 나간지 무려 16년 만에 돌아왔었거든. 그게 380년. 맞아 딱 떨어지는 년도라서 기억하고 있어.
결혼은 또 언제 했는지 남편도 데리고 왔는데... 문제는 그 이듬해 4월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빵 한 조각을 뜯어먹고 있는데 언니가 갑자기 커다란 가방을 주지 뭐야. 그리고 쫓겨났어. 농담이 아냐, 정말 쫓겨났다니까! 그냥 쫓겨난 것도 아냐.

'수련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우리 집안의 전통이란다.'

라면서 강제로 공간이동 시켜버린 거야! 정신 차리니까 난데없이 처음 보는 도시가 눈앞에 떡하니 펼쳐져있는데, 그게 말이되!? 그것도 잠옷 차림에, 멍청한 표정으로 입에는 빵 하나를 물고 있고,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쫓겨났다니까!

사람들은 왠 정신 나간 여자냐 하면서 쳐다보지, 난 또 나대로 이게 왠 정신 나간 사태냐 하고 있지.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냥 쫓겨 난거면 말을 안 해. 공간이동이라니. 공간이동은커녕 소환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내가 별 수 있어?
결국 그대로 여행을 시작했어야 했지. 일단 근처에 가서 여관으로 들어가서 적당히 (그게, 가방에 들어있는 돈이 얼마 안돼서 결국 또 며칠간 일을 해줘야 했어) 방을 잡고 물어보니까 세상에, 에오카 대륙이라잖아.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지 뭐야.

정말이지 친언니가 아니었으면 당장에 돌아가서 사생결단을 냈을 거야. ... 하긴 뭐, 이길 수도 없었겠지만 말야.
진짜 그 괴물 같은 언니, 자매 지간인데도 어쩜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생물체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간 또 언니한테 쫓겨날 게 뻔하고 결국 싫든 좋든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래도 다행인건 그렇게 여행하다 굶어죽기 직전에 아디오스를 만났다는 걸까? 마침 돈이 다 떨어져서 며칠을 굶다가 쓰러졌는데 그 사람들이 발견해서 목숨을 건졌어. 그리고 우리 언니랑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고 또 혼자 돌아다니다간 그때야말로 굶어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나도 아디오스에 입단했지.

에, 확실히 좋아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 재밌는 활동이긴 했어. 재수 없는 귀족들을 혼내주기도 하고 이래저래 신나는 일은 많았거든.
정의의 비밀 집단 같은 거라고 할까. 평소엔 방랑곡예단으로 위장하고 실제로 공연 같은 것도 펼치다가 나쁜 사건 같은 거 만나면 비밀리에 해결에 나서는 거지. 난 공연에서는 마법을 이용해서 특수 효과를 주로 담당했어. 우리 누나는 가끔 기분 내키는 대로 신비한 춤을 공연했다고도 하는데, 난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아무튼 신기한 인간이라니까. 종잡을 수가 없어.

일단 아디오스에서는 3년 정도 머물렀는데, 이 대륙으로 건너온 건 그 직후야. 헤에, 벌써 4년 전 일이네.

그게 아디오스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찾아와서 말야. 어떻게 찾아 왔겠어. 또 예지력이지 뭐. 그 예지력으로 뭔가 감을 잡았는지 나보고 갑자기 아이사 대륙으로 건너가라지 뭐야. 이상한 지도 하나랑 고문서 하나를 주더니 선조의 유산을 찾아오라는데... 그게 바로 아까 말했던 시간의 정령이야.

에? 너 안색이 좀 안 좋은데 괜찮아? 술 너무 마신 모양이네. 여기 물 좀 마셔. 응? 아니라구? 뭐야,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에, 내가 더 취했다고? 하, 사람 우습게보네. 내가... 욱...! 하아... 속이 갑자기 울렁거리네에... 아냐, 괜찮아. 됐어. 에에. 뭐, 알아서 해 그럼. 얘기 계속한다?

음, 그래서 그 지도랑 고문서 대충 해독해서 시간의 정령이 있다는 유적까지는 갔어. 그런데 아무것도 없지 뭐야. 당황했지. 빈손으로 돌아갔다간 엄마나 언니한테 호되게 당할게 뻔했으니 말야. 어쩔 수 없이 대충 유적 구조 좀 조사하고 고문서 더 해독한 다음에 마법으로 시간의 정령을 추적하긴 했는데, 이번엔 더 당황했어.

시간의 정령을 찾았더니 글쎄 문이랑 같이 있지 뭐야! 세상에, 거기서 문이랑 재회할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크리드 전란 때 에오카 대륙에서 아이사 대륙으로 넘어 왔다지 뭐야. 그래서 트레져헌터... 말이 좋아 트레져헌터지 도굴꾼으로 먹고 살던 문이 우연히 우리 선조 유적 발견해서 시간의 정령이랑 같이 돌아다녔다니, 이것도 우리 엄마가 예상한 일이었는지. 아무튼 엄마랑 언니한테 이래저래 끌려 다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니까.

그런데... ... 그런데 있잖아? 나 굉장히 나쁜 여자야. 문에게도 그 아이한테도 굉장히 나쁜 짓을 해버렸어. 아하하... 정말... 나, 무지 무지 나쁜 년이야.

그 아이... 아, 설명을 안 해줬구나. 시간의 정령 말야. 걔 말하는 거야. 이름은 테미. 에... 원래는 바람의 정령이었다나 봐. 생김새도         좀 이국적인 애였는데... ... ... 소멸했어.

...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그냥 문을 좀 골려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알고 있어! 이런 칙칙한 얘기 술자리에 안 어울린다는거!! 지나간 일로 바보같이 질질 짜고 싶은 생각도 없어!

하지만... 하지만 정말 그 뿐이었어! 제단에서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 몸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단 말야. 그래서 제단으로 데려가서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냥, 문 녀석 속 좀 썩어봐라-하고 말 안하고 데려왔을 뿐인데...

아하하... 눈물이 흐르네... 바보 같애. 미안. 나 잠시 진정 좀 해야겠어... 음... 됐다.

그 때, 제단에서 그 아이 마법 회로의 구조를 변환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무슨 해코지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문이 끼어들었거든. 그러다 마나 흐름이 역류했고, 대기 중에 마나 폭풍이 형성돼서 문이 죽어버렸어. ... 내 잘못이었어. 바보 같은 짓... 하는 게 아니었는데...

문을 살리기 위해 그 아이가 마나 폭풍 속에서, 나 때문에 불완전한 상태로 시간을 되감아버린 거야. 불가능한 일이었어. 시간을 이동할 순 있어도 시간 자체를 조작하는 건 불가능해. 이 세계의 속한 자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즉, 그 아인 그 때 이 세계의 것이 아닌 힘, 오르의 파편이 지닌 힘을 완전하게 사용해버렸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파편으로서의 능력을 완전하게 끌어냈다는 건, 곧 파편과의 완전한 동조. 오르의 파편은 이 세계에 개입하는 것일 뿐, 이 세상의 존재가 아냐.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거지. 오르의 파편이라는 것도 개념만이 존재하는 거니까.

그래서 그 아이... 그 일이 있은 뒤로 1년 쯤 뒤에 파편과 완전히 동조하게 된 시점에서 사라져버렸어.

... 나 왜 그랬던 걸까? 그냥... 사실대로 말하고 테미를 데려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문도... 슬퍼하는 일이 없었을 텐데.

그 아이랑 문이랑 정말 사이가 좋아보였거든. 그래서... 그래서, 나 조금 질투 했었나봐. 나도 문을 좋아했는데. 아니, 좋아하는데. 다시 만나서 정말 기뻤는데. 왜 하필 그 아이가 옆에 있었던 거야. ... 부러웠어. 그래서... 나... 바보 같이...

... 미안. 미안해, 문. 나... 앞으로 잘 할 테니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

*

“미안.. 해...”

루나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싶더니 이내 곧 조용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는 3.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술주정을 시작하나 싶었더니 어느덧 새벽 3시다. 빈 술통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바닥 한 가운데 엎드려 막 잠이 든 루나를 들쳐 업으며 문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술주정 말리는 것도 지쳐서 좋을 대로 떠들게 놔뒀더니 결과는 이 모양. 뭔가 얘기를 길게 하는가 싶더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먹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달래주기에도 복잡한 심경이었다. 무지막지한 술값을 지갑을 탈탈 털어 지불하고 겨우 숙소로 돌아가는 가운데, 등에 업은 루나의 잠꼬대가 조용히 들려왔다.

“좋아해.”

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진짜 자는 거냐 아니면 자는 척 하는 거냐.”

취중진담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속타는 사정 모르는 달만 휘영청 빛나는 밤이었다.


- 루나 로엘 로자린느의 취중진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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