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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닥터? 통신기는 아직 쓰지 말라더니!
“됐어. 일단 그건 신경 끄고, 거긴 별일 없어?”

통신 회선이 제대로 연결된 것을 확인한 미경은 시끄러운 유진의 말은 무시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확인할 것이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돌아온 유진의 대답은 미경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게, 이상해요! 제어가 듣질 않아요. 아니, 그보다 이 지진은 대체 뭐예요!

옆에서 솟구친 물기둥을 피해 근처 자판기 뒤로 몸을 숨기며 미경은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쯧.. 설명하자면 길어. 그보다 언제부터 그런 거야?”
-그게... 아까부터...
“하? 그럼 당장 알렸어야지!”
-아니... 그게... 민우 선배한테 연락해보니 닥터 놀러갔다고...
“... 하아...”

어쩐지 맥이 빠지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확실히 자신이 괴짜라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이유가 어찌되었든 혼낼 생각이긴 했었지만 저렇게 쩔쩔매며 말을 하니 미경으로서도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애들이 군기가 빠졌다고 해야 할지 스스로를 반성해야 할지 고민되는 가운데 미경은 우선 일부터 시키고 보자는 생각에 통신기를 다시 입가로 가져갔다. 하지만 선수를 친 것은 미경이 아닌 유진이었다.

-아악!!
“응? 무슨 일이야?!”

통신기를 통해 터져 나온 유진의 비명소리에 미경은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지하 공동에서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오늘은 모든 게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들뿐이었다. 당황한 것은 유진 역시 마찬가지인지 통신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아쿠아가... 말을 안 들어요. 제멋대로... 폭주하고 있어요! 닥터, 이건 대체--!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통신이 끊어져버렸던 것이다. 뭔가 우지끈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일어난 일이었다.

“유진아, 유진아?!”

당황한 미경이 몇 번을 다시 불러봤지만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지직거리는 노이즈 음 뿐이었다.

“제길!”

결국 치미는 짜증을 참지 못한 미경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아, 그래. 제대로 해주면 될 것 아냐. 어제는 일본에서 오늘은 한국에서 골고루 사람 성질 긁는단 말이지. 어디 끝나고 보라지!”

애꿎은 자판기를 걷어차며 화풀이를 한 그녀는 손을 들어 머리끈을 새로 묶었다. 가운에 묻은 먼지도 모두 털어내고 여기저기 구멍이 난 스타킹도 벗어버렸다. 이어 지저분해진 안경까지 깨끗하게 닦아 새로 쓴 다음, 그녀는 자판기 뒤에서 걸어 나왔다. 여전히 소용돌이 치고 있는 물의 벽을 똑바로 마주보며 선 미경은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부딪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확인할 필요도 없이 확실한 일이었고 이제는 행동을 취해야할 차례였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다 시켜서 하는 일인데 말이지. 설마 자기 일 돕는 사람한테까지 피해주겠어?”

혼잣말이지만 그래도 어쩐지 힘이 솟는 기분이라고 할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미경은 물의 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디, 해보자!!”

강렬한 수류의 흐름이 몸을 덮쳐왔다.
*
-때가 되었습니다.
“무슨...!”

시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꿈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인의 주변을 맴도는 빛이 폭발하듯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그 격한 흐름 속에 존재했던 시현은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인의 단호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당신의 선택을 따라 걸어가세요.

시현은 자신의 밑에서부터 푸른빛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여인의 녹색 빛에 대항하기라도 하듯 맹렬한 기세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은 녹색 빛이 그랬던 것처럼 이윽고 주변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현재의 알 수 없는 세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푸른 빛 너머로 흐릿하게 현실의 모습이 비쳐 보이고 있었다. 그 중엔 물의 벽을 뚥기 위해 애쓰는 미경의 모습도 있었다. 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도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점차 뚜렷해지는 현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여인의 모습은 흐릿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하고 뚜렷하게 시현의 귀를 울리고 있었다.

-그대가 선택한 길을 관철할 힘을 드리겠습니다.

지면이 한층 더 심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무언가 거대한 것이 호수 속에서 솟구쳐 나왔다. 의식이 한없이 멀어져 가는데 시현은 그것의 모습을 뇌리에 새기기 위해 노력했다.

“푸른... 거인...”

그것은 파란색의 거대 로봇이었다.

“큭, 아쿠아(Aqua)...!!”

지진이 강해지면서 물의 벽이 한순간 약해진 틈을 타 안으로 뚫고 들어오는데 성공한 미경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 거대 로봇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유진과의 통신이 갑자기 끊어진 이유도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유진들이 손보고 있었던 것이 저 거대 로봇, 아쿠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뒹굴고 있는 문제의 지저분한 천 뭉치를 발견해 그것을 집어 들었다.

“하아... 하아...”

억지로 수벽을 뚫으려 한 탓인지 삭신이 쑤시고 욱신거렸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미경은 천 뭉치를 풀어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어른 주먹 정도 크기의 투명한 파란색 광석이었다. 허공에 떠있는 시현과 마찬가지로 그 광석 역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미경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푸른빛이 그녀의 손에 들린 광석과 시현의 사이를 회전하기 시작했다.

“나, 레이더스의 제자 리뮤드(limud)가 명한다.”

시현은 그 빛의 흐름 속에 몸을 맡겼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주변이 완전히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 여인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계속 되고 있었다. 의식의 끈을 완전히 놓치는 가운데 미경과 여인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라 엘의 힘을 받든 존재여.
“무한한 운명의 흐름 속에서.”

푸른빛이 마치 눈보라처럼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방황하는 존재여.
“지금,”

그리고,

-깨어나세요.
“각성하라.”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 엑!?”

물론 시현이 비현실적으로 허공에 떠있던 것까지. 밑에 서있던 미경이 시현에게 깔렸다는 것 역시 당연한 이야기였다. 의식이 멀어져가는 가운데 미경의 입에서 이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각성 한 번... 요란하게 한다 이거지.”

그것이, 시작이었다.



---분세전기 세이버리온(分世戰記 SaverLion) 제 1장 꿈꾸는 소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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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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