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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혈전: 군대 스타크래프트를 알려주마!

군대…라고 하면 금겜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입대 앞둔 장병 여러분들, 너무 걱정 마시라. 잘만 빠지면 사복입고 핸드폰도 들고 다닐 수 있는 곳이 군대다. 고로 잘만 빠지면 게임이라고 못하라는 법 절대 없다. 비록 잘 빠진 케이스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즐긴 나의 군부대 게임史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으려 한다. <글 / 사나이울프(woltramania@hotmail.com)>


구축, 무한대전 시스템

아마 상말(주1) 때쯤이었을 것이다. 90명이 기거하는 30M짜리 베히모스급
내무실에 펜티엄1 컴퓨터 두 대가 나란히 설치된 때가….
케이블을 이용해 IPX연결을 시켜놓으니 싸제(주2) PC방 부럽지 않은 스타크래프트 대전 시스템이었다. 그 때 필자는 비록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상말, 물병장급이기는 했으나 내무실 인구수가 다소 무한맵급인 관계로 마음대로 스타를 즐길 수는 없었다. 내 위로 스무 기 이상의 병장들이 있었고 그 중 스타만 붙잡고 사는 말년들도 제법 있었으니까. 입대 전 래더점수 1,300을 몇 번 못 넘어본, 수상경력이라곤 ’98 은평구 PC방 사장님 연합배 팀플대회 우승한 것이 고작인, 동네 PC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수였지만 말빨 한 부대에 허풍 몇 기를 조합해준 덕에 고참들은 나를 거의 프로게이머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고로 허구한 날 무한맵에서 20분 노러시에 최소 한 시간씩 플레이하는 고참들 어깨너머로 훈수나 두어주고 또 가끔 새우탕 내기를 앞둔 고참에게 파워 드라군 빌드나 보여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으며 운 좋으면 5분 핸디캡매치(주3)를 할 수 있는 날도 있었다




필자는 이래봬도 강원도 철원 모 포병대대의 인사과 계원 출신이다!



주1) 상말: 상병 말호봉의 준말. 상병으로 복무하는 기간이 8개월이기에 상말은 곧 상병 8호봉을 뜻한다. 상병 7호봉은 상말둘, 혹은 말둘이라고 칭한다. 물론 전군통일된 호칭은 아니다  

주2) 싸제: 미국산을 미제라고 칭하듯 군부대가 아닌 지역, 즉 민간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을 사제라고 부르지만 지금은 싸제가 되었다. 조선시대 양란을 거치며 ‘갈’의 발음이 ‘칼’로 변하듯(칼 모양의 생선을 ‘갈치’라고 부르는 것이 증거) 좋지 않은 환경에서 언어는 언제나 격화되기 마련. 군언어 격화현상의 예로써 꽈자(과자), 꼭꽹이(곡괭이) 등이 있다.  

주3) 5분 핸디캡매치: 고참은 정상적으로 시작하고 후임병은 5분 뒤에 시작하는 합리적인 핸디캡 부여 방법.


황금기의 도래와 N모 길드 출신의 신병
그렇게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어느덧 나도 눈치 안보고 맘대로 스타하는 이른바 ‘개말년 짬밥’을 먹게 되었고 드디어 군생활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우리 내무실 90명에 옆 내무실 30명, 총 120명 중에 싸제에서 스타 좀 해봤다는, 그러니까 이른바 테란이라면 골리앗으로 방황 좀 해봤다는, 저그라면 히드라로 침 좀 뱉어봤다는, 프로토스라면 질럿으로 연장질 좀 해봤다는, 그런 쫄다구들을 한 열일곱 명 정도 추려서 그 유명한 17:1의 형식으로 붙어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쫄다구들이 계속 돌아가며 나에게 도전하는 고참제일주의 시스템이라는 거다.

아, 물론 한 2년여 스타 안 했다지만 내 실력이 어디 갔겠는가? 사실 많이 갔지. 그래도 쫄다구들 또한 나하고 마찬가지 신세일 테니 뭐 내가 꿀릴 건 없지 않은가. 95%이상의 승률로 쫄다구들을 돌려가며 참 유쾌하게 살았었다. 랜덤저그 4드론 저글링 + 성큰러시 또는 목숨 건 초패스트 몰래리버드랍 같은 일회성, 도박성 전략으로 날 이긴 쫄다구는 반드시 수양록(주4)에다 적을 정도였으니 부대 내 나의 위상은 한마디로 ‘우리부대 임요환’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이등병들 중엔 나를 꺾을 놈도 있었겠지만 이등병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는 게 상상이나 할 일인가? 칼각잡고 있는 대기신병들 억지로 앉혀서 붙어본 적은 있지만 또 싸제스타랑 군스타가 오리지널과 브루드 워 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제 실력 발휘하는 놈은 없었다


엽기적인 전술만 난무할 뿐…  


그러던 어느날, 팀플로 유명했던 N모 길드원이었다는 운전병 신병이 들어왔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내가 또 어찌 붙어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이 놈이 로스트템플에서 저그로 나의 테란에게 깨지더니만 아 글쎄 병무청 장병대장에 잉크도 안 마른 손자뻘 되는 그 놈이 ‘김 병장님, 헌터에서 리겜하면 안되겠습니까?’ 이러는 거 아닌가? 허허. 그 하드코어적인 당돌함을 높이 산 것도 있고 또 마메 VS 히럴의 중앙 힘싸움(주5)의 손맛을 입대 후 이렇게 짜릿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으므로 흔쾌히 리겜을 수락했다. 나 6시 테란 VS 신병 7시 프토였는데 난 사실 헌터에서 일대일을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고로 빠른 질럿에 대비한 입구막기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바락을 들었다 놨다 SCV로 잘 막아졌나 통과도 시켜봤다가 이러고 있는데 이 녀석이 프로브 한 마리로 정찰을 와서는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신병 : Hi.

Hi라… 첫 정찰에서 보내는 Hi라는 메시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군대에서, 그것도 까마득한 이등병에게 받는 Hi라는 메시지는 주는 느낌이 조금은 달랐다. 힘들었던 2년여의 내 군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메시지를 받았으면 화답을 해주는 게 예의라는 네티켓이 불현듯 생각났다.

나: ‘Hi’ is banmal.

그렇다.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극히 기본적인 군대예절이었다. 나는 상급자로서 하급자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는 선임병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를 행했다. 나의 지적을 받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후임병은 즉각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신병: Hiyo.

구경하던 물병장(병장 1호봉)이 한 마디 한다.

“이게 돌았나. 군대에서 말끝에 ‘요’ 붙이게 돼있냐? 그리고 고참한테 경례도 안해?”

신병: Tong il! (부대경례구호가 통일이었다)

그러던 중 신병의 질럿 한 기는 초병없는 위병소, 즉 마린도 없이 제대로 못 막은 입구를 통과해 유유히 나의 지휘부 쪽으로 기동하고 있었다. 작전기동로가 확보됨을 확인한 프로토스 측에서는 재차 삼차 후속증원조를 고속침투시켜 항복사인인 GG를 받아내고야 말았다.

나의 어이없는 패배는 은폐엄폐와 기도비닉이 용이하고 지형의 차폐로서 화력의 집중이 가능한 고지사수형의 로템이 아닌 지형의 기복이 거의 없어 작전로의 개척이 용이하고 개활지에서의 백병전이 유리하며 진지구축이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졌을 때 전투준비태세완비에 심대한 제한사항이 수반되는 헌터형 맵에 대한 적응력 부재였던 것 같다고 나는 패인을 분석했다(이 대목에서 아직 군대 안가보신 분은 내용의 이해에 심대한 제한사항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개말년 병장의 GG를 받아낸 이등병 때문에 점호 끝나고 상말급들이 자기들 밑으로 다 집합시키는 것 같았다. 뭐 이런 식의 훈계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그 상황의 재연




주4) 수양록: 싸제말로 일기장이라고 부르는 것. 대개 매주 일요일 저녁 작성하게 되며 恨과 고통의 역사가 기록된다.


주5) 마메 VS 히럴: 테란측 마린, 메딕 조합과 저그측의 히드라, 럴커 조합이 격돌하는 테란 대 저그전의 대표적인 힘싸움. 후반이 되면 테란측에는 시즈탱크과 사이언스 베슬, 저그측에는 울트라리스크와 디파일러가 추가된다.  

“야 요즘엔 신병이 말년병장님들한테 ‘김 병장님 리겜합시다’ 이러더라? 그리구 이겨버리더라? 군대 참 좋아졌다 그지? 나 때는 모니터 쪽으로 눈알만 돌아가도 바로 주먹 날아왔어, 알어? 근데 병장님하고 같이 겜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리겜하고 이겨버려? 앞으로 내 밑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 꼴 안보이게 해라. 김 병장님이 하라고 했다 뭐 이런 변명하는 놈들 다 혀로 바닥미싱(주6)시킨다! 대답 안 해?”

뭐 이런 식으로 좋게 잘 타일렀겠지? 일석점호 끝나고 당직사관 나간 다음에 물병장급 내무실장이 꼬장 부리는 시간 있지 않은가? “요즘 대변기 청소 이등병만 하드라? 일병급들 짬밥 좀 먹었다고 손에 물 묻히기 짱나냐? 앞으로 일병 4호봉부터 대변기 청소해라”라든지 “내 밑으로 라면, 커피 금지다. 알았냐? 또 상병 꺾였다고 깔깔이(주7) 쳐 입고 밖에 돌아다니면 깔깔이 먹여버린다” 뭐 이런 식의 꼬장들 부리지 않는가.



이것이 깔깔이. 본 명칭은 방한내피다 -_-;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참님들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이러면 누워서 이등병한테 장난치던 말년들 일어나서 몇 마디 더 하고. 난 그런 꼬장타임이 너무 즐거웠다. 떠억 일어나서 인상한 번 써주고 “야 앞으로 내 밑으로…”라고 운을 떼면, 그러면 다들 이번엔 뭘 금지시킬까 하고 분위기 싸아~ 해진다. 그리고 나선,

“내 밑으로 캐리어 뽑지마!!”

혹은

“상병 5호봉 밑으로 저글링 발업하고 돌아다니지 마!! 짬밥 안되면 발업할 생각하지 말고 뛰어다녀! 그리고 나 때는 고참 질럿숫자보다 저글링 숫자 많으면 바로 집합했다, 알어 니들?”

이래버리면 나보다 두 달 밑의 병장들이 이런다.

“얘들아 김 병장 말년에 똥칠한다~ 어서 재워라~”

각잡은 신병 앞에서 꾸물꾸물 기어다니면서 리버 흉내 내고, K-1 방독면 쓰고 핵 쏘는 고스트 흉내 내고, 거꾸로 엎드려뻗쳐 자세(배가 하늘을 보는, 일명 해병대식 엎드려뻗쳐)로 ‘아이 엠 비행기’ ‘썩다말았쓰’(주8) 등의 대사와 함께 드라군 흉내 내면서 기어코 신병을 웃겨버리는 그 말년만의 재미!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얘들아~ 신병이 고참들 앞에서 웃는다~



이등병은 웃을 수 없다



주6) 바닥미싱: 주로 안 꺾인 상병급이 담당하는 청소섹터. 손걸레를 길게 4단으로 접어 양끝을 양손으로 잡은 상태로 바닥에 밀착시키고 내무실 바닥의 물기를 제거해 나아가는 청소방법을 일컫는다.


주7) 깔깔이: 병장제대한 대한의 야비역들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의류. 마름모꼴로 누빈 한복저고리 모양의 방한용 솜옷으로써 2001년 겨울 이후 연두색에서 베이지색으로 색상이 바뀌었다(심지어 지퍼와 주머니까지 생겼다!!). 바지 깔깔이는 상병 꺾이기 전엔 누릴 수 없는 레어아이템.  

주8) 아이 엠 비행기, 썩다말았쓰: 프로트스 유닛 드라군의 대사.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스타크래프트를 실행시키고 들어보라.  

모포크래프트 ver 1.00

취침 후 야간에 몰래 스타즐기기처럼 재미있는 것이 또 없다. 재수 없이 당직사관에게 걸리면 군생활이 늘어날 수도 있으므로(주9) 고심 끝에 고안해낸 것이 하나 있었으니….

모포를 넓게 펼쳐 두 대의 모니터와 플레이어를 불빛 하나 새어나가지 않게 완전히 은폐/엄폐시키고 최상의 기도비닉(주10)을 유지하여 당직사관이 들어와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테란의 클로킹, 저그의 버로우에 비견될 만한 가히 혁명적인 발상의 스타크래프트 플레이 방법이었다. 우리는 이를 ‘모포크래프트’라 칭하고 후임병과 타부대원들에게 널리 전파하기도 했었다. 컴퓨터 근처에는 분명 아무도 없고 모니터도 꺼져 있는데 마우스 째깍거리는 소리만 들리기에 질겁했던 불침번들도 있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사회에서 아무도 모르는 군인들의 눈물겨운 스타크래프트 혈전. 오늘도 그렇게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  


주9) 군생활 늘어나다: 입창하다, 즉 ‘영창 가다’의 다른 표현. 입창일수는 복무일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입창일수만큼 전역일자가 늦어지게 된다. 군생활에서 가장 피해야할 상황.


주10) 기도비닉: 冀圖秘匿, 꾀한 바를 들키지 않게 숨긴다는 뜻의 한자조어로써 싸제에서는 흔히 쓰지 않는 표현이다.  








(출처:게임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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