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컴퓨터의 로고는 사과 모양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색깔로 된 온전한 사과가 아니라 한 입 베어 먹은 무지갯빛 사과다. 이 로고를 둘러싼 해석이 구구하다. 사과는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지혜로움을 나타내고, 무지갯빛은 애플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에 비해 컬러 표현이 자유롭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호사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로고가 동성애자였던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튜링은 1936년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튜링 머신'을 고안했고, 43년에는 연산컴퓨터 '콜로서스'를 만들었다. 인류 최초의 컴퓨터는 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개발된 '에니악'으로 알려져 왔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콜로서스가 앞선다고 한다.
또한 튜링은 40년 '봄베'라는 기계를 발명했는데, 자신보다 먼저 유사한 기계 '봄바'를 만들고자 시도했던 폴란드 과학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비슷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튜링은 꽤 의리 있는 사나이였던 것 같다. 튜링은 이 기계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높던 독일의 '에니그마'가 생성한 군사 암호를 해독,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와 같은 지대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튜링의 인생은 비극적이었다.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감옥에 갈 것인지 아니면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을 맞을 것인지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호르몬 주사의 영향으로 신체의 변화를 겪게 되자 튜링은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 주사기로 사과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후 백설공주처럼 독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 자살했다. 53년 그의 나이 겨우 42세였다.
튜링의 죽음은 동성애에 보수적이었던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공론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20여년 지난 76년, 인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라 명명하고,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을 로고로 정하였다. 컴퓨터 발명의 토대를 마련한 튜링을 즉사시킨 독사과를 형상화한 것이다. 무지갯빛이 동성애자를 나타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해석은 더욱 설득력있게 들린다.
애플 컴퓨터의 로고로 환생한 튜링과 마찬가지로 과학자의 생몰 연도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뉴턴(1642~1727)은 갈릴레이(1564~1642)가 죽은 해에 태어났고, 맥스웰(1831~1879)이 죽은 해에 아인슈타인(1879~1955)이 태어났다. 프랙탈 이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만델브로트(1924~ )가 탄생한 해는 프랙탈의 선구자였던 코흐(1870~1924)가 생을 마감한 해다. 분야는 다르지만 경제학자 마르크스(1818~1883)가 죽은 해에 케인스(1883~1946)와 슘페터(1883~1950)가 태어났으니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마치 위대한 과학자가 생을 마감하면서 못다한 일을 그 다음 천재 과학자에게 물려주는 듯한 운명의 연결고리가 느껴진다.
갈릴레이가 죽고 300년 뒤에 태어난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으로 사지를 쓰지 못하며, 이미 젊었을 때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호킹은 최연소로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고, 뉴턴의 자리였던 루카시안 석좌교수로 선정되었으며, 올해 62세가 되도록 건재하다.
위대한 과학자들의 생애가 꼬리를 물면서 연속되는 것을 보면 호킹의 생존은 그의 뒤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아직 출현하지 않아서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