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억,허억."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나같이 선량한 시민이...
수없이 씨불거리며 한 청년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뒤를 알 수 없는 인영이 쫓고 있었다.
"썅,아직도 쫓아오네!"
청년은 뒤를 돌아보고는 재차 씨불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재난이냐고.'
평범하고 품행방정한 데다 선량하기까지 한 나를 왜 저런 괴물이 쫓고있는 거냐고.
소년의 이름은 이선모,이 근방을 평정한 명실공히 학원가의 제왕이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콘크리트를 한방에 부수고 팔뚝만한 철근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구부러뜨리는 움직이는 괴수 모형에 비하자면,오히려 지나치게 평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까 그 사람들 때문인가?'
좀 정신나간 사람들 같기도 한 옷차림이었으나,코스프레라도 하고 있는거라고 어설프게 넘겨 버렸다.지금 선모는 그사람들이 저 괴물을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묘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없다.
"씨발,대체 이게 뭔 재난이래."
계속 쌍욕을 해대면서 그는 골목길을 벗어났다.하지만 20m도 안되는 골목길은 이상하게 너무 길었다.한 10분은 더 뛴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계속 괴물을 신경쓰느라 못 봤지만,20m면 골목밖이 보여야 정상이다.그러나 흐릿한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골목길에 있는 모든 색깔들이 그냥 어지러이 섞여 있는듯 보였다.
"이건 또 무슨경우야."
선모는 울고싶은 마음을 간신히 달래며,일단 일직선으로 뻗어난 골목길을 계속 달렸다.
10분이나 달렸기에 이미 체력은 바닥을 넘어섰지만,살고싶다는 욕망은 그것을 무시했다.
몇분 뒤,체력이 다 떨어져 '이제 죽는구나'하고 있던 중 골목길 사이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독특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얼핏 보였다.
약 20여분간 일직선의 골목길을 달리면서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중 거한이 달려나가던 선모를 잠시 응시했다.그리고 고개를 돌려 괴수를 바라보았다.
"이놈! 잡았다!!"
괴한은 귀가 쩌렁쩌렁할 정도의 목소리로 외치며,도약했다.아니,날았다.그 표현이 차라리 적합하리라.
거한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물리현상과 맞는게 아예 없을 지경이었다.
한번에 엄청난 높이를 도약하는 거 하며 그 민첩한 움직임이란!
그나마 현실적인 것은,그 거구에 알맞은 파괴력이었다.사실 그나마도 별로 비슷하지 않았다.
콰앙!
거구의 봉이 떨어진-또는 괴수를 맹습한-자리는 이미 초토화되어 있었다.피륙으로 된 사람의 힘으로 어찌 저런힘이-!
괴력이라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저것또한 인간이 아냐.
그 괴력에 질린 선모가 다시 내달음쳤다.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체력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괴한의 일행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여성이 선모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리고 말했다.
"수고했어요."
뭐?
대답할 틈도 없이 황망히 서 있던 선모를 기절시킨 여성이 확인이라도 하듯 다시 말했다.
"수고했어요."
그러자 거한이 말했다.
"수고한 댓가를 치루지는 못한 듯 싶군.이놈은 가짜야."
거한이 한팔로 괴수의 시체를 슬쩍 들어올려보였다.그러자 괴수의 사체는 퐁-!하는 귀여운 소릴 내면서 종이조각으로 흩어져버렸다.
"속았네요."
여성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나저나,그 녀석은 어쩔 건가?"
선모를 가리키며 걱정스럽게 거한이 물었다.
"역귀의 미움을 받았으니.......어쩔까요?"
여성이 여유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걸내게 물으면 어쩌나."
거한이 난감하게 웃었다.그리고 아직 대문앞에 있는 신부복의 남자에게 물었다.
신부복을 입은 남자는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한 남자였는데 대문앞에서 삐딱하게 서 있다가 말했다.
남자가 묻기도 전에 말이다.
"그냥 죽여버릴까요?"
전혀 신부답지 않다.저런 놈에게 신부직을 준다면 이 나라 기독교는 이미 붕괴된거나 다름없잖겠는가?
거한은 혀를 끌끌 차더니 여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이자가 일어나면 결정하세나"
그 말과 함께,그들은 사라졌다.그리고 골목길도 흔적도 없이 복구되어버렸다.
마치,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2
대단히 고풍스러운 방이었다.
문풍지가 붙어있는 문에서 은은한 채광이 비쳐왔다.
그 빛에 '아으음' 하고 신음 소리를 내던 선모가 눈을 떳다.
눈 앞에 무언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날 구해준 사람들인가.
"여기가 어디죠?"
선모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그러나 방에는 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자기 외에 아무도 없는 빈 방이었다.
헛물을 켠 꼴이 된 그는 힘없이 슬쩍 웃다가 다시 성질을 냈다.
"이것들이 사람을 기절시키고 감금한 주제에 아무도 붙여주질 않아?!"
길길이 날뛰던 그는 사박거리는 발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스윽,
옛날 조선시대에서나 쓸 법한 문이 열리고 자신을 기절시킨 여성이 들어왔다.
선모는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경황이 없어서 몰랐지만 그녀는 실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선모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여인은 선모에게 살짝 미소지어주었다.
그때까지 슬쩍슬쩍 여인의 얼굴을 훔쳐보던 그도 당황해서 고개를 수그렸다.
피식.
선모의 행동에 웃음을 지은 여인이 말했다.
"몸은 좀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나.밤에 괴수에게 쫒기다가 여인에게 얻어맞고 기절한 것 뿐이다.
좀 쪽팔리지만 딱히 몸에 문제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자신의 몸을 뚤래뚤래 살펴보던 그가 여인에게 고갤 돌렸다.
"절 이곳에 왜 데려오신거죠?"
그녀는 잠깐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은....."
"뭐요?!"
선모가 비명같은 소리를 질렀다.여인은 계속 미소짓고 있었고.
여인의 말은 대충 이랬다.
'당신은 재수없게도 귀신한테 찍혔어요.그것도 역귀한테'
그 이외의 말은 별로 들리지 않았다.자신들이 역귀를 잡기 위해서 동분서주중인데,운 좋게도 자신을 발견해서 구해줬다는 것이다.
잠깐 흥분해서 여인을 쳐다보던 그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이거 몰래 카메랍니까?"
"아니오."
"그럼 그냥 장난?"
"아니오."
"아하하하,그럼 꿈인가보네요."
"그것도 아닌것 같은데요?"
"씨팔,장난까지마!"
이성을 잃은 선모가 흡사 발악하듯 소리질렀다.잠시 허억허억 하고 숨을 고르던 선모가 말했다.
"집에 갈랍니다."
"집은 위험해요."
"위험은 무슨."
픽 웃은 선모가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그녀가 제지했다.드디어 인내심이 완전히 폭발한 선모가 광태를 부렸다.
"이런 썅!어쩌라고! 난 집에 가야한다구!"
거칠게 그녀를 밀치고 문을 나서려던 선모는 누군가가 문 앞을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괴수를 박살내던 그 거한이었다.
그 거한에게까지 성깔을 부릴 용기가 없었던 선모가 말없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고 거한이 들어왔다.
"이보게,지금 집에가는 건 자살행위야,십리도 못가서 죽을거라는 것을 장담해주지."
'그런 걸 장담해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선모가 채념한 듯 주저앉았다.
"난 당신네들 말 못믿겠습니다."
"믿을 수 밖에 없을 껄?."
거한이 말했다.
"나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완전히 채념해버린 선모가 물었다.
"일단 말일세...."
거한은 자신들의 스승을 만나보라고 종용했다.
천명거사라나? 꽤나 잘난 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은 받았는지 몰라.'
그는 투덜거리며 천명거사가 기거하는 건물 앞에 섰다.
이곳에 있는 모든 건물들은 전통방식도 아니고 현대방식이 섞인것도 아니었다.
꽤나 독특했다.
거한이 문 앞에서 송구스럽다는 듯 말했다.
"저...스승님?"
그러자 차분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젊은이."
선모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3
"이런 미친늙은이!"
건물에서 쌍 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난감하다는 듯한 노인의 웃음소리..
"허허허...사람하고는."
"그걸 지금 나보고 하라고? 미친 늙은이! 혼자 하시지!"
그리고 그가 문을 박차고 나섰다.손에는 묘한 생김새의 검을 들고 있었다.
일본도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으나 손잡이가 좀 더 길고 검 자체의 길이도 상당히 긴 편이었다.
거의 140cm에 육박하는 검.
선모가 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었다.
그리고 말릴새도 없이 산문을 나섰다.
"허어......"
노인이 선모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따라가 보게."
"예,거사님"
거한이 급히 선모의 뒤를 따랐다.
챙그랑.
허리에 슬쩍 찬 검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어둡다.형용하기 힘들만큼 어둡다.
씨발.
이건 또 무슨 개같은 경우야.
나 하나만 건들면 됐잖아,나 하나만.
널린 핏줄기,이미 고깃덩어리인 것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 개새끼들!!!!!!!"
"왜...왜."
그리고 선모는 정신을 잃었다.
-삐뽀삐뽀
앰뷸런스,하지만 이미 고깃덩어리가 된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
선모는 더 이상 가족들의 유해를 볼 자신이 없었다.
"크흐흑"
"이보게,살 사람은 살아야지."
거한이 빵쪼가리를 내밀었다.
"내가 지금 이걸 처먹게 됐어!? 이게 다 당신들 때문이야! 살려내! 살려내라고!"
선모가 발악하며 거한의 멱살을 잡았다.그러나 2미터가 넘는 거한의 멱살을 잡았다기 보다는 마치 매달려있는 것 같았다.
"진정하게."
거한이 슬쩍 손을 치워냈다.그와 거의 동시에 선모가 울부짖었다.
"으허어어엉--!"
한참 동안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약 2주일 뒤,어느 동네의 어느 뒷골목.
"꺄아아악!"
한 여성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왜 항상 구출물에는 여성이 가장 먼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상당히 급박한 상황이었다.
허연 소복차림,허연 피부,또 허연 눈깔.
발도 없지롱.
<완벽한 처녀귀신!>
이라고 감탄할 여유가 없었던 처녀는,소용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도망다니고 있었다.진짜로 못 쫒는건지 아니면 즐기는 건지 처녀귀신은 여성을 슬슬 쫒았다.
원래 이럴때는 그냥 날아오지 않는다.처녀귀신은 손을 뻗으며 순간이동같은 움직임으로 여성을 쫒았다.
"뒈져."
굉장히 차분한 소리가 들려왔다.처녀귀신은 발끈해 '이미 뒈졌어!' 라고 외치지는 않았다.
영혼마저 벨 듯한 차가운 목소리.
귀신조차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뻐억!
허연 영기에 뒤덮인 검.
그것이 샛누렇게 빛나는 순간!
-꺄아아아아-------------
귀곡성이 뒷골목을 울렸다.그리고 귀신은 꺼지듯 사라졌다.
"좀만한게."
선모가 혼비백산해 달아나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며 뇌까렸다.이미 처녀귀신은 혼마저 으깨져버리고 없었다.왠 정신병자 귀신인지는 모르겠지만,특별한 한 같은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게,도깨비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완전히 소멸한 터,걱정할 이유는 없다.
선모는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
.
.
노인은 말했다.
"자네는 이미 역귀에게 눈독이 들여져 있다네."
"역귀? 그 병옮기는 귀신 말인가요?"
"그렇네."
"그,그런놈이 왜 저한테 달라붙는 거죠?"
황당함이 역력하게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장난질,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네."
"그럼 전 어떻게 해야하는거죠?"
노인이 잠시 선모를 바라보았다.갑작스런 노인의 눈길에 왠지모를 섬뜩함을 느낀 선모.
"뭐,뭡니까!"
흠칫 놀라며 앉은채로 슬금슬금 물러났다.그와 거의 동시에 노인의 입이 열렸다.
"성인이 되게나."
성인?
"19세 이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네."
"그럼....별나라 사람들?"
그가 대뜸 헛소리를 했다.
"아니네."
"그럼....예수나 석가모니 같은 사람들? 불가능해요!!"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하죠!"
그렇다면 말일세....
노인의 눈이 빛났다.
#4
생귀(生鬼)가 되게나.
생귀.
말 그대로 살아있는 귀신 말일세.
모든것에 초탈하여 성인(聖人)이 될 수 없다면 모든것에 연연하고 마음에 품게나.
그래서 살아있는 귀신이 되게나.
선모는 황당했다.
무슨 공상소설도 아니고 웬 살아있는 귀신?
말대로 된다 치더라도 황당했다.
귀신은 무슨 귀신.
"웃기지마! 이 늙은이야! 늙으려면 곱게 늙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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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이 유난히 밝았다.보름달도 빛나고 도심속인 서울 하늘에 보기드물 정도로 밝았다.
..
뒤로 느껴지는 기척.선모가 대뜸 말을 내뱉었다.
"노인네가 보내서 왔나요?"
"천명거사라고 해줄 수는 없겠나?,어찌 보면 자네의 은인같은 사람 아닌가"
"은인은 무슨."
선모는 거한의 말을 무시하고는 담배를 꼬나물었다.학원가의 제왕으로 군림할 때부터 애용했던 담배.
생귀가 되면서 담배의 대한 집착은 더 강해졌다.
털어버릴 수도,잊어버릴 수도 없는 생귀.
이런 저주가 세상에 또 있을까.
"자네의 부모님의 원수는 알다시피 역귀일세. 병을 옮기는 귀신."
"근데요?"
"자네 실력으로는 혼자서 역귀를 없앨 수 없어."
귀신은 오래 묵을수록 강해진다.일반적으로 귀신은 자신이 살았던 것보다 약 두배 가량을 귀신으로 존재하게 되면-이런 일은 거의 없다.귀신이 되면 일단 맹목적으로 복수하고 성불해 버리니까-인간의 관습과 인간같은 움직임을 버리게 되고 강대한 능력을 부릴 수 있게 된다.
역귀는 그런 귀신들중에 최상의 존재 몇천년을 존재해왔고-어떻게 나타났는지는 몰라도-그 힘 또한 대단하다.몇천명의 인간을 병의 제물로 바쳐오지 않았던가.
"하고 싶은 말이 뭐죠?"
"......"
거한이 잠시 망설였다.
"할 말이 없으신가 보군요. 그럼 전 가보죠."
"우리들과 한팀이 되어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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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두번만 연재하면 사라질 분량의 단편.
더 쓰고 올려야 하지만 귀찮은 나머지...;;
언제 단편이 끝날지는 미지수.(참고로 강령술사 연재는 단편 끝나고 나서...또 오프닝까지 바꿀 예정-의지박약이라니까(-ㅂ-)-입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