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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시판

[상상연작 1회] Close Encount

2004.12.01 11:43

연緣 조회 수:1844









Close Encouter _ 어느 소녀들의 만남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붕대로 대부분 감겨 있었다. 소녀는 앞이 보일 수 있도록 붕대를

살짝 걷어올리고 눈을 찡그렸다.



아파.



곳곳에서 소녀의 몸을 쿡쿡 쑤셔대는 쓰라린 통증. 위험한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

한 몸부림과, 소녀에게는 너무 힘겨운 일과가 남긴 상흔이었다. 거울 앞에서 소녀

는 어설프게 감긴 붕대를 풀면서 생각했다.



이런 생활은 싫어. 새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소녀의 생활은 분명 자유로웠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소녀는 자유였고 그 시간

동안은 무엇이든지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새장에서 벗어난 작은 새는

그 익숙하지 못한 날갯짓으로 금세 가시덤불로 추락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소녀 역시 자유의 가시덤불 속에서 대가를 쓰라리게 느끼고 있었다. 날마

다 생겨나는 크고 작은 상처, 그리고 공허한 자유의 시간.



그렇지만, 나는……. 돌아갈 수 없어.



소녀는 새장 밖의 세상을 선택했다. 그리고 소녀의 부모는 소녀를 버렸다. 포근

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가 있는 새장의 문은 닫혀버렸다.



하하.



상처가 너무 큰 탓일까. 붕대를 풀었지만 눈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소녀는

슬프게 웃었다. 나는 왜 자유를 선택한 것일까. 나는 왜 사탄의 뱀이 건네주는 사

과를 먹은 것일까. 나는 왜 영생의 에덴에서 뛰쳐나간 것일까. 하하.


희미하게 보이는 거울. 거울에는 소녀가 아닌 깨끗한 옷차림에 티없이 깨끗한 피

부를 가진 소녀가 비치고 있었다. 환각일까. 요새 피곤해서 환각이 보일지도. 이

상해. 소녀는 거울을 밀치고 대강 붕대를 묶은 다음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소녀를 만났다.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티없이 깨끗한 피부에 크림을 바르고 있었다. 소녀 자신은 크림 따위, 바

르고 싶지 않지만 부모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귀찮아.



옷과 머리 곳곳에 달린 장신구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 항상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운명과, 절대적인 부모의 명령이 달아놓은 것이었다. 거울 앞에서 소녀는 거

치적거리는 장신구 몇 개를 벗어놓으면서 생각했다.



이런 생활은 싫어. 새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



소녀의 생활은 분명 편안했다. 부유한 집안이었고 항상 따뜻하고 편안한 생활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새장 안의 작은 새는 포근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

사가 있지만 자유롭게 날아오르기 위한 날갯짓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소녀 역시 억압의 편안한 새장 속에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날마다 기품

과 우아를 강조하는 부모, 그리고 공허한 일상.



그렇지만, 나는……. 역시 나갈 수 없어.



소녀는 유명한 가문의 장녀였다. 가출이 용납될 리가 없고, 또한 가출한다고 해

도 잡아오지 못할 부모가 아니었다. 그리고 소녀는 이미 새장 안의 생활에 익숙

해져버렸다. 밖을 동경하지만 또한 밖에 대한 공포도 가지고 있었다. 높고 멀리

날아오를 수 있는 새장 밖의 문은 결코 스스로 열지 못했다.



하하.



크림은 이미 곳곳에 발라졌지만 소녀는 계속 문질렀다. 소녀는 공허하게 웃었다.

나는 왜 새장 속에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사탄의 뱀이 건네주는 사과를 받지 못

했을까. 나는 왜 에덴에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하하.


화려하게 장식된 거울. 거울에는 소녀가 아닌 너저분한 옷차림에 상처투성이의

소녀가 비치고 있었다. 환각일까. 환각이 보이나봐. 이상해. 소녀는 거울을 덮고

겉옷을 걸친 다음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소녀를 만났다.











닮았다. 아니,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키도 같았고 전체적인 몸의 형태도 같았다.

붕대에 가려진 얼굴의 실루엣마저. 공공 화장실과 어느 커다란 저택에서 나온 소

녀들은 서로의 상대방과 너무나 같은 생김새에 말을 잃고 우두커니 멈춰섰다.



누구지?

누굴까?



소녀들은 동시에 떠오른 의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똑같은 방향으로. 서로의 앞에

거울을 둔 것처럼. 소녀들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려 상대방을 만져보려고 시

도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온 소녀들의 손가락이 서로 맞닿았다.



챙강.



마치 거울이 깨지는 것처럼, 상대방 소녀에게 가느다란 금이 새겨졌다.



어……?



와장창.



깨져버렸다. 어쩌면 소녀 자신밖에 듣지 못했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어져내린

소녀의 파편은 소녀의 발치에서 잠시 머물다가 천천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런 일은 없었다는 것처럼. 소녀들은 자신의 발치를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



역시 너무 무리했던 거야.

환각이 보여. 병원이라도 가야 하나?



소녀가 있었던 장소를 멍하니 손으로 만져보던 소녀들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

리를 콩 쥐어박고는 다시 소녀들 자신의 일상으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Close Encouter.

어쩌면 서로가 원했을지도 모르는 운명과의 만남은 그렇게 헤어졌다.














어쩌면 내가 사는 세상 반대편에는 나와 같지만 또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

도 모른다……. 지구는 둥글고 완전히 같은 또다른 내가 존재할 확률은 로또복권

연속으로 당첨될 확률만큼 낮겠지만요.


지금보다 더 나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는 상상. 그 선택이 자신의 생

애에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줄 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

까요.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써봤습니다아.
















PS.

……는 개소리고~ 솔직히 새벽타임에 두들기고 그 전에 꿍쳐둔 월급봉투 들켜서
애들한테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뭔가 써야겠다는 의무감에 쓰긴 썼는데, 릴레이
가 아니라 상상연작이데요. 써놓고 나도 아,  그거였구나. 하고 깨달아버렸죠. 와
하하. 그냥 냅두기는 쪽팔리니 언제 다시 수정해서 올려보겠습니다아. 그래도 후
기는 정직하게 썼어요;; 후기만.